조선 17대 왕 효종(1619~1659)은 그의 딸 숙휘 공주가 수놓은 옷 한 벌을 원하자 "나는 지금 한 나라의 왕으로서 솔선수범하여 검소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데 어찌 너에게 수놓은 옷을 입게 할 수 있겠는가?" 라며 허락하지 않았다. 왕이 솔선하는 자세로 공주에게 가르치는 모습이다. 최근 사회의 CEO들도 솔선하는 모습은 마찬가지라 본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경영자의 자세를 과거처럼 '나를 따르라'가 아닌 '네가 먼저 자율적으로 해보라'로 바꿔보라는 것이라고 그의 자서전에 밝히고 있다.

대종사 하루는 실상사에 들렀는데 한 노승이 젊은 상좌에게 참선을 하라 하되 잘 듣지 않는다고 꾸짖자, "저 사람으로 하여금 영영 참선을 못하게 하는 것도 화상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대종사는 "남의 원 없는 것을 강제로 권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영영 그 일을 싫어하게 함이니라"며 "저 바위 속에 금이 든 줄을 알았거든 내가 먼저 채굴하여 그것을 광채 있게 쓰면 사람들이 그 금을 채굴하려 할 것이라며, 이것이 곧 사람을 제도하는 묘방이라"고 〈대종경〉 실시품 2장에서 훈계하였다.

여기에서 내가 도를 닦는 것이 남을 가르친다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할 때 내가 먼저 솔선해야 남이 따라온다는 뜻이다. 유교의 팔조목에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가 있다. 자기 자신이 먼저 수신을 해야 제가와 치국이 되는 솔선의 가치가 중시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것이 〈정전〉에 밝힌 최초법어이다. 여기에는 수신의 요법, 제가의 요법, 강약 진화의 요법(치국), 지도인의 요법(평천하)이 밝혀져 있다. 제가와 치국, 평천하는 자신 먼저 솔선하는 수신(修身)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들이 말만 앞세우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생이 무명에 가리기 때문이며 적공의 실천을 등한히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처는 말보다는 손수 행동으로 실천하여 남이 따르도록 하고 있다. 소태산은 "나는 내 일을 먼저 조사하고 연구하여 본 후에라야 비로소 그대들의 하는 일을 살피나니, 그대들은 먼저 자심 시비(自心是非)를 조사하라"〈월말통신〉 7호고 하였다.

나는 실천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권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 언제나 내가 모범을 보이는 솔선수범을 할 때 상대방이 그 행동을 본받는 것이다.

원기9년 봉래정사에서 익산에 총부를 건설한 이래, 공동체 생활을 하던 중 총부 대중들이 마당 청소를 하는데 별로 깨끗이 하지를 못했다. 이를 보고 대종사는 빗자루를 받아들고 친히 마당을 쓸면서 말했다. "자! 보아라. 청소를 하는 데에도 공부가 들어있다. 그렇게 하는 둥 마는 둥 해서는 안 된다. 자갈은 자갈대로 모으고 검불은 검불대로 오아야 한다." 스스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는 괭이 박힌 성자의 모습에 제자들은 감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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