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교당 사진원 교무, 교화 활력소

▲ 언양교당에서 합동입교식을 하고 있다.
언양교당의 군예회는 원기92년 1월14일 첫 문을 열었다. 부임한 다음 날 대대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 이튿날 장병들을 교당으로 데리고 와 예회를 봤다. 부임하기 전 이미 교구와 김대화 교도 내외가 127연대 1대대 군법회 개설을 위한 준비를 다 해 놓은 상태에서 나는 짠~하고 문만 열면 되는 거였다. 30년 넘게 모은 돈으로 교당 리모델링 한 깨끗한 법당과 생활관을 인수받은 나는 손에 든 몇 만원에 기죽지 않았다. 정말 귀신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한 교도가 나타나 얼마 남지 않은 난방유를 채워주고, 변변치 않은 살림에 동기 교무가 쌀 한가마니를 보내주고, 혜진원 원장님은 후원인을 데리고 와 해마다 부대 내 삼겹살 파티를 열어 필자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또한 김일상 부산교구장은 군교화를 위해 승합차를 사주며 후방 지원했고, 군교화 초창기 대모 역할을 했던 홍명전 교무는 고향 친구인 대대장을 입교시켜 군교화에 힘을 보탰다. 수많은 은혜와 축복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평균 72.6세의 고령 교도들만 있던 교당이 군교화로 활기를 되찾으며 공양 봉사자와 새로운 사람들이 교당의 주인으로 나서면서 일반교화는 활력을 찾았다.

군예회 4년은 수많은 교화 이야기가 숨어있다. 길게는 2년을 온통 같이 보낸 장병도 있고 짧게는 2~3개월 만난 장병도 있다.

작년 10월말 이었였다. 밤 10시가 한참 넘었는데 벨이 울린다. 놀라 누구냐고 물으니 "교무님! 저 ○○예요!"하며 교무님이란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아니 대낮 놔두고 이 밤에!"하며 문을 여니 2층 생활관 계단을 뛰어 오른다. "법당부터 들러 인사해야지"하니 "밖에 택시 세워 놨어요. 빨리 포항에 가야 하는데 교무님께 인사를 빼먹어서요. 교무님께서 전역하면 인사하고 장가 갈 때 색시 데리고 오라고 하셨잖아요"하면서 반갑게 인사한다. 갑자기 청년의 얼굴에 코피가 흐른다. 제대 후 열흘도 안돼 직장을 구하고 여기저기 인사를 가던 중 교무를 잊지 않고 찾아 준 것이다. 그때의 감동이 군교화에 있어 게으르고 하기 싫은 마음이 날 때마다 나를 일으켜 준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