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조심해! 감히 우리 스승님 한테….

▲ 황상운 그림
동학으로 불리던 천도교의 손병희를 중심으로 불교, 기독교 대표 33인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이 1919년 3월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최초 낭독되고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일제가 깜짝 놀란다.

종교단체나 종교인을 향한 칼날을 곧추세운 것이다. 전라남도 영광경찰서 수사과도 한층 바빠지기 시작한다.

"거, 백수면 길룡리에 저축조합을 세운 박중빈이란 자가 있다는데 조사해봐!"

"하이, 본관이 맡겠습니다."

"홍 순사가 맡겠다고?"

"하이."

"그자가 보통이 아니야. 간척사업을 벌여 수백마지기 논을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야."
간척사업이 끝나갈 무렵, 영광경찰서 순사가 길룡리 저축조합에 나타난다.

"박중빈, 나오지 못할까?"
일제의 꼭두각시나 다름없는 한국인 홍 순사가 방언공사 일을 상의하던 저축조합 문을 활짝 열며 소리친다.

"말조심해! 감히 우리 스승님한테…."
"뭐? 스승님이라고."
"그래, 당장 잘못을 빌지 않으면 무사하지 못할 줄 알라!"
혈기 왕성한 한 제자가 무섭게 대든다.

박중빈이 그에게 조용히 타이른다.

"저 사람이 나를 아직 알지 못하여 그러니 크게 탓 할 일이 아니오. 남을 교화시키려면 정성으로 감화시켜야하오. 질 자리에서 질 줄을 알면 반드시 이길 날이 오며 이기지 못 할 자리에서 이기면 반드시 지는 날이 올 것이니 조용히 말하시오."

그렇지만 순사는 저축조합을 샅샅이 뒤지더니 작업일지를 찾아내어 품삯으로 쓰는 많은 돈이 위조지폐의 여부를 의심한다.

"이 작은 조합에서 어떻게 수 천 명의 일꾼들의 품삯을 대단 말이오."
순사의 거동을 지켜보던 저축조합 살림꾼 김성섭이 거든다.

"이 거금은 조합원들이 숯장사에 담배 끊고, 술 끊으며 저축한 돈이오."
"잔말 할 것 없다!"

큰 소리는 치지만 아무런 꼬투리도 찾지 못한 홍 순사가 당황한 나머지 우뚝 서있는 박중빈을 쳐다보더니 화들 짝 놀란다.

1미터 80센티미터 키에 90킬로그램이 되는 몸무게의 위엄한 자세에 기가 질린 것 이다.
홍 순사가 줄어드는 기를 되살리려는 듯 차고 있던 긴 칼을 드르륵 뽑아들더니

"더 조사할게 있다. 경찰서로 가자!"
"뭐? 경찰서로? 안 된다. 우리 스승님을 경찰서로는 절대 보낼 수 없다."

다시 홍 순사와 저축조합원들 사이에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별 일이 아니오. 할 일들이나 잘 하고 있으시오."
박중빈은 차분한 말로 한사코 연행되어가는 스승을 막아내려는 제자들을 안심시키며 영광경찰서로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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