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주에서 비롯된 쌀 나눔 문화 확산

▲ 운조루 뒤주.
▲ 깨뒤주.
▲ 뒤주.
뒤주는 곡식을 담아두는 세간도구이다. 나무로 만들어 곡식을 담는 궤로 통나무나 널빤지로 짜서 곡식을 보관하는데 사용된다.

통나무로 만든 뒤주는 밑둥과 머리에 따로 널빤지를 대어 막고, 머리 부분의 한쪽을 열도록 문짝을 달아 낟알을 넣거나 퍼낸다. 널빤지를 짜서 만드는 뒤주는 네 기둥을 세우고 벽과 바닥을 널빤지로 마감하여 공간을 형성하고 머리에 천판(天板 : 천장을 이루는 널)을 설치한다. 천판은 두 짝으로 만들어 뒤편의 것은 붙박이로 하고 앞쪽으로 여닫는다. 여닫는 데는 쇠장석을 달아 자물쇠를 채운다. 장석은 두드려 양감을 만든 꽃모양 장석이다. 이외에는 장식이 없다. 소형이지만 단단하고 안정감 있게 짜인 가구이다.

또 네모반듯한 상자를 여러 개 만들어 차곡차곡 쌓고 그 위에 이엉을 덮어 만든 것도 있다. 이 밖에 네 기둥을 세우는 뒤주의 서너 배 크기로 만들어, 기둥의 앞면에 따로 기둥을 세워 문벽선을 삼고, 그 문벽선에 물홈을 파고 널빤지를 드린 것도 있다.

뒤주는 용도에 따라 쌀을 담아두는 쌀뒤주, 팥이나 콩 등 잡곡을 담아두는 잡곡뒤주가 있다. 쌀뒤주의 1변은 1m내외이고, 그 크기는 보통 쌀 1∼2가마 들이이다. 잡곡뒤주는 30∼50㎝ 정도의 크기로 그 양은 3∼4말 들이가 보통이다.

뒤주의 재질은 무늬가 아름답고 단단한 괴목이 좋지만, 회화나무, 소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었고, 대나무, 싸리나무, 버드나무 등을 이용하여 나락을 수납하는 나락뒤주를 만들기도 하였다.

뒤주는 보통 두꺼운 판절을 써서 뚜껑을 위로 두고 다리를 높직하게 만들었다. 몸체에 비해 기둥이 높은 것은 뒤주 안에 들어오는 습기를 막아 오랫동안 곡식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쥐가 뒤주 안에 들어가서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뒤주는 지면과 약 10㎝ 가량 떠 있으며, 이를 다리가 받쳐주고 있다. 뒤주의 높이는 보통 1.5m 정도이다.

뒤주는 두지(斗支), 도궤(度櫃), 두주(斗廚), 두도(斗度) 등으로 불린다. 대개 대청마루나 찬방에 두고 사용한다. 보통 부녀자들이 관리한다.

일반적으로 담기는 곡식과 크기에 따라 뒤주를 구분하는데 큰 것은 쌀뒤주, 중간 크기의 것은 잡곡(팥) 뒤주, 제일 작은 것은 깨뒤주라고 했다.

무속에서는 뒤주 대왕신이 있어 뒤주 속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신으로 모시고 있다.

운조루, 나눔의 정신 심어줘

지리산 자락,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영조52년 류이지 공이 지은 운조루(雲鳥樓) 고택이 있다. 이 집의 곳간채 앞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씨가 새겨진 쌀뒤주가 있다. 둥글둥글 풍신한 몸매로 아름드리 소나무 속을 그대로 파내 원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타인능해'란 다른 사람 누구나 마개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춘궁기나 양식이 없는 이는 누구라도 쌀뒤주 아래편에 직사각형의 마개를 열고 쌀을 퍼갈 수 있는 뒤주였다. 뒤주의 위치도 집 주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놓아두어 쌀을 가져가는 이가 마음 편하도록 했다.

운조루를 안내하는 문화해설사 류맹효(87·류이지 공의 8대손) 씨는 "이 집에서는 한 해 200가마의 쌀을 수확하면 이 뒤주에서 나가는 쌀이 대개 36가마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또한 굴뚝 높이를 1m도 안 되게 낮게 만들어 밥 짓는 연기가 배고픈 이웃에게 보이지 않도록 했다. 류이지 공은 연말에 이 뒤주에 쌀이 남아있으면 손님 대접을 소홀히 했다고 해서 하인들이 주인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여순반란과 각종 민란, 한국전쟁 때 많은 지주의 집이 파괴됐다. 하지만 이 집이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류 문화해설사는 "자선을 베푸는 집이니 계속 자선을 베풀도록 보전해야 된다는 그들의 뜻이 있었다"고 전했다.

'타인능해'라 적힌 쌀뒤주 원래의 마개는 4∼5년 전에 도난을 당했다. 지금의 마개와 글씨는 1776년 운조루를 세운 류이지 선생(1726~1797)의 8세손인 류응교 교수(전북대 건축과)가 복원해놓은 것이다.

이웃 사랑 실천 확대

최근 쌀 나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결혼식이나 회갑식에서 화환이나 화분을 대신해 쌀 화환을 받는다. 이 쌀 화환을 요양원이나 고아원, 급식소, 밥차 등에 전달한다. 우리나라가 농경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배고픔에 고민하는 주민이 있다.

강원도 횡성군·읍사무소에서는 이러한 쌀뒤주를 현관에 상설로 만들어 누구든지 가져다 놓고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누구나 쉽게 이웃 사랑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