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죽음준비는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있지 않다

▲ 최준식 교수 이화여대, 한국죽음학회장
근자에 '버킷 리스트(The Bucket List)'라는 미국 영화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이 영화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두 남자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버킷 리스트'라는 목록에 적어 하나씩 해 나가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인기 TV 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에서도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과업 달성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가 생전에 어떤 일을 한들 죽음이 바로 목전에 닥쳐오면 그 모든 것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죽음에 직면하면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여 임종자 본인은 존엄하게 생을 마치고 가족들은 사랑하는 친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그 후에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의 제정은 현 상황에서 대단히 필요한 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을 배경으로 한국죽음학회에서는 '한국인을 위한 웰다잉 가이드라인(가제)'을 제정해 곧 발표한다.

죽음 준비 단계 1

죽음 준비의 첫 단계는 위에서 예시한 것처럼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생을 돌아보고 존엄하게 이 생을 마칠 수 있게 준비하라는 것이다.

이때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는데 유언장과 사전의료의향서(사전의료지시서)를 작성하는 것이 그것이다. 유언장은 사실 이러한 상황에 닥쳐서 쓰는 것보다 건강할 때 평상의 감각으로 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언제라도 수정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찍 써두는 게 본인에게 유리할 것이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사전의료의향서(advance directives)의 작성이다. 이 문서에는 우리가 의식 불명 상태가 됐을 경우 어떤 의료행위를 받을 것인가를 미리 밝혀놓는 것이다. 이 문서는 비가역적인 상태에 돌입하면 반드시 작성하는 것이 좋다. 이 상태가 되면 언제 의식 불명의 상태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그 때를 위해서 그 전에 만들어놓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만일 이 문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가 시행되어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아름답지 못한 임종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

죽음 준비 단계 2

이제 당사자는 죽음 바로 앞에 서게 된다. 이때 우리는 죽음이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인생의 과정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이처럼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당사자는 삶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고 지금까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에 취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는 죽음을 피동적으로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종교 경전 가운데에 〈원불교 전서〉대종경 천도품에 제일 자세하고 자상하게 나와 있다. 이 원불교 경전의 내용을 확대부연해서 보도록 하자.

우선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의미가 있었는지 돌아보고 만일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지금부터 어떤 삶을 살아야 의미 있게 자신의 삶을 마칠 수 있는지 궁구해야 한다.

다음은 인간관계에 관한 것으로 척을 졌거나 원한을 진 관계가 있으면 반드시 그 사람을 불러서 척진 마음을 풀어야 한다. 만일 당사자를 부를 수 없다면 본인의 마음속에서라도 그 맺힌 마음을 풀어야 한다는 게 소태산의 생각이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대부분 사람들은 가족들과 같이 있게 된다. 따라서 당사자가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이때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은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당사자가 임종한 후에도 항상 종교 의례 같은 것을 통해 그를 생각할 것이라는 확신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의 삶 속에서 행한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들을 상기시켜주어 그가 매우 좋은 삶을 살았다고 제언해준다.

아울러 당사자가 얼마 남지 않은 삶의 날들을 긍정적으로 살 수 있게끔 돕는 일에 노력을 아끼면 안 될 것이다.

위의 경우는 당사자가 아직 의식이 있을 때에 할 수 있는 일이고 의식 불명 상태가 되었을 때에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이 경우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당사자가 의식 불명인 것처럼 보일 뿐 많은 경우에 적어도 청각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적인 죽음학의 대가였던 퀴블러 로스 박사가 계속해서 지적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의 충고에 따르면 당사자가 아무리 의식 불명의 상태에 있더라도 '사랑한다'라든가 '미안하다'라고 하는 말을 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손을 잡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몸의 일부분을 쓰다듬으면서 위로의 말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의식을 찾은 사람들의 증언에서도 증명되는 바이기도 하다.

죽음 준비 단계 3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선지자들은 이 죽는 순간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을 한다.

소태산은 임종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임종 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소상하게 제시했는데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가족들이 지켜야 할 일이다. 그는 당사자가 마지막 숨을 몰아 쉴 때 절대로 감정에 북받쳐서 울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고 있다. 그런 행위는 몸을 빠져 나가는 영혼에게 큰 혼란을 안겨 영계로 향하는 노정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소태산의 가르침은 더 자상하다. 정히 울음을 참을 수 없다면 몇 시간 지난 다음에나 울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기독교인은 어떨까? 그들에게 죽음은 신께 돌아가는 일이니 무작정 슬퍼할 만한 일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조용하게 기도로 가는 영혼의 편안한 여행을 빌지 않을까? 그런데 이 기도조차 몸을 빠져 나가는 영혼의 앞길을 더디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근사체험을 학술적인 방법으로 처음으로 세계에 알린 레이몬드 무디 주니어의 책(Life After Death)에 나온다.

어떤 할머니의 에피소드인데 그는 죽었다고 판정받은 뒤 살아났다가 다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자식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부탁을 한다. 이번에 자신이 죽을 때에는 기도를 너무 많이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는 지난번에 자신이 죽을 때 자식들이 하는 기도 때문에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일이 힘들었다고 실토했다. 이 상황에 대해 추측해보건대, 아마도 자식들은 기도를 통해 강렬한 염원으로 어머니 혼을 붙잡을 것이고 그 힘이 영혼의 진척을 막은 것은 아닐까? 사람들의 생각이 어떤 힘(염력)을 갖고 있다면 이 힘이 물질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너무 미약하지만 영체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즉 영혼 혹은 영체가 일정한 파동을 지닌 에너지라는 통속적인 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생각이 영체에 영향을 주리라는 것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일이 아닐까?

위에서 본 여러 가지 이론들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임종의 마지막 순간에 망자가 편하고 고요하게 최후를 마칠 수 있게 돕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지구상의 많은 신비가들은 죽음은 결코 끝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사건이라 죽음이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재삼 강조했다. 아니, 어떤 신비가는 '죽음은 신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주장할 정도로 죽음을 찬미했다. 이들은 우리 같은 범인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매우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인지라 그들이 하는 말은 신빙성이 꽤 높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분들의 높은 말씀을 귀담아 듣고 자신들의 죽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죽음 준비 단계 4

마지막으로 내세관을 확실하게 세우는 일이 아름답게 죽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은 임상에서도 쉽게 판별할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후생의 존재가 전제되지 않으면 이 생은 무의미하다. 이것은 죽음을 바로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절박한 문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호스피스가 행해지는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후생에 대해 확실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생의 최후까지 의연하게 산다고 보고되고 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아무래도 종교인들이 많을 것이다. 이들은 사후생을 철저하게 신봉하기에 더 알찬 삶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호스피스 병동은 인생에 종을 치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굳이 호스피스 병동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은 우리가 죽음에게 패배해 저승사자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곳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 본 것과 같이 죽음에 대해 보다 더 적극적인 생각을 갖고 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도면밀한 준비와 충분한 학습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죽음을 완성하는 일이다.

마치면서

우리는 죽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또 다른 일을 벌이는 게 아니라 인생을 정리하고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학습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소태산은 제자들에게 40세가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죽음 준비를 하라고 한 것은 대단한 탁견이라 하겠다. 소태산은 앞서 말한 대로 임종 시 경건한 마음을 갖던지 정신을 집중하라고 하는 등 매우 종교적인 임종을 강조했다. 이런 태도가 죽은 뒤의 삶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병에 걸릴 수도 있지만 현대 사회에는 예기치 못한 사고도 많다. 인재로 생기는 교통사고도 있지만 천재지변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죽음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게 맞다.

죽음 교육은 죽음에 대해 가르치지만 결국은 삶에 대해 가르치게 된다. 그래서 죽음 교육은 삶에 대한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삶은 철학적으로 어려운 의미의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된 삶인가?', 혹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같은 매우 실제적이면서 긴요한 질문과 관계된다. 따라서 따로 어렵게 철학이나 윤리 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죽음 교육 속에서 훌륭한 인성 교육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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