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대교당이 들어선 신도안은 원불교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땅이다. 주초석에 새겨진 '불종불박(佛宗佛朴)'에 깊은 의미를 두고 있다. 육·해·공군 3군 본부가 들어선 신도안은 옛 삼동원과 신도교당이 오랜기간동안 재가 출가교도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했다.

10월24일 진행된 계룡대 교당 봉불식을 통해 이런 역사의 뒤안길을 되돌아 보게 됐으니 감회가 새롭다. 삼동원은 정부의 6·20사업으로 인해 인근 천호산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신도안의 주초석을 둘러보며 불종불박 바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역사적 내용을 살펴보면 주초석은 태조가 1393년 2월경 본격적으로 궁궐터를 닦기 시작하다 12월에 계룡산 천도 계획이 취소된 이후 한양 천도가 단행되면서 남게 됐다.

대종사는 1936년 이공주, 전음광을 대동하고 계룡산에 다녀가며 원불교 수도 도량을 마련할 것을 당부한 것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후 1959년 10월 신도안 대궐터 불종불박 바위 뒤에 있는 초가 1동을 매입했고 1960년 신도교당이 설립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불종불박은 교단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기 때문에 신도안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교화의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계룡대교당 신축 과정도 불종불박의 정신을 통해 군 간부와 장병들에 대한 건전한 심신고취에 만전을 다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그동안 계룡대교당이 신축 되기까지 고비를 넘긴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경과를 살펴보면 2006년 계룡교당에서 군간부의 협조를 얻어 부대내 식당 한칸을 빌려 종교행사를 시작한 이후 그해 3월 원불교가 군종병적편입대상종교로 선정되면서 9월부터 민간 성직자 상시 출입증과 부대 차량 협조를 얻어 본격적으로 예회를 보게 됐다.

이듬해인 2007년 8월 계룡대 내 교당 신축 기부채납 승인 요청 공문을 접수 했으나 승인을 받지 못하다가 2008년 4월 국방부 병영정책팀으로부터 건축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그해 6월 교당 건축 후 기부 채납에 대한 합의 각서를 계룡대 시설단과 체결했다. 이에따라 2009년 3월 계룡대교당 신축 기공식을 갖고 그해 8월 교당 건축을 착공해 봉불식을 거행하게 됐다. 계룡산 중앙봉 자락에서 봉불식을 갖게 되었으니 뜻 깊다. 이것은 재가 출가교도들의 기도정성으로 이룬 결실이다. 계룡대교당 봉불을 계기로 군간부와 장병들이 종교생활을 통해 군정신 강화와 은혜실천에 모범을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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