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위태하다는 말이 나오는 고전의 출전은 〈서경〉 '우서편'으로 "인심은 오로지 위태로우며(人心惟危), 도심은 오로지 은미하다"고 하였다. 공자 역시 마음이 자칫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밝히며 "배우지 않고 생각만 많으면 위태하다"(思而不學則殆)라고 했다. 따라서 고대 성현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심에 유혹되어서 공부심으로 살지 않으면 마음이 위태로울 뿐이라는 것이다.

본 문목은 원기14년 2월26일 불법연구회 예회에서 있었던 강연과 일치한다. 송도성 종사는 익산 본관의 예횟날 '사람의 마음은 오직 위태하다'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당시 예회일지에 의하면, '법회와 강연을 마치고 폐회를 선언하니 오전 12시10분이었다' 〈월말통신 12호〉고 기록하고 있다. 2시간 남짓 법열에 찬 법회 분위기였음을 짐작케 한다.

주산종사가 강연 제목으로 설한 내용이 본 문목과 일치하고 있으니 흥미로우며, 더욱이 주산종사의 강연에 이어서 그의 부친 송벽조 교무가 2개월 뒤 4월26일 〈월말통신〉 14호에 이와 관련한 글을 게재하고 있으니 부전자전(父傳子傳)의 법풍을 불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송벽조 교무에 의하면 "인심은 유위(惟危)하고 도심은 유미(惟微)하다"며, 인심이 오직 위태하다 함은 의리에 부당한 일이 그른 줄은 누구나 다 알지만 부당한 재색명리에 유혹되기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면 마음이 위태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소태산대종사는 우리의 마음이 위태로워지는 원인으로 타인을 해롭게 하면서 자기만을 유익하게 하려는 마음임을 밝히고 있다. 〈대종경〉 교의품 5장에도 모든 경계를 대하여 마음을 쓸 때 희로애락과 원근친소에 끌리는 마음이 위태로운 마음임을 밝히고 있다.

실제의 삶에서 위태해지기 쉬운 마음의 일례를 살펴보도록 한다.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21장에 "물화의 보배는 허망하기 뜬 구름 같고 위태하기 누석 같다"고 말했다. 이는 정산종사가 전음광 선진에게 설한 법어이다. 마음이 위태로워지는 것은 산위에 쌓인 바위(累石)가 쏟아져 내리는 것에 비유하고 있으며, 이는 마음의 오욕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불같이 일어나는 마음 하나하나 챙기며 정심(正心)을 간직하여야 하는 것이다.

위태한 마음의 극복은 마음공부가 요체이다. 박길선 선진의 일기를 보자. "마음을 졸이고 태워가며 담을 넘고 벽을 뚫어 그 위태한 모험을 하여 물건을 절취하여다가 저의 안락을 얻으려함은 그 오즉이나 저를 위한 일이 아니고 무엇이랴?"〈월말통신 22호〉. 이에 내 마음을 도적질하는 위태한 마음을 성찰하여 조촐한 마음을 길들이기에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에 위태로워지는 마음을 벗어나려면 경계를 따라 나타나는 요란함과 어리석음, 그름을 극복하는 것이다. 심지는 원래 맑고 조촐한 자성의 원리에 바탕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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