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왜 아픔이 많고 슬픔이 많은 부모님을 찾아왔는지 알았다. 내가 슬프고 내가 외로웠기에 나와 똑같은 마음을 가진 부모님을 만났다.

행복은 조건에 있는 줄 착각하며 살았다. 한이 많고 너무 슬픈 부모님을 만나서 나는 오빠가 박사가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오빠의 박사는 가난이라는 시련을 딛고 우뚝 서서 남보란 듯 으시대고 싶은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줄 대리만족의 대상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의 못 배운 한을 대신 풀어줄 박사 아들을 고대했고 나는 부모님에 대한 짐을 장남인 오빠가 가져가 주길 원했다. 아들로 태어난 오빠에게 모든 기득권과 의무가 있다고 믿었고 딸로 태어난 나는 이미 기득권이 박탈되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기득권이 없는 내가 부모님의 짐을 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원을 대신하여 풀어줄 오빠는 구원자로서의 역할을 온몸으로 불사르며 장렬하게 산화했다. 자신에게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오빠는 그렇게 죽음으로 자신을 불살라 버렸다.

아버지는 지난날 당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회한이 많아 당신의 허전함을 술로 채우시며 사신다. 나는 아버지가 술을 마셔대면서 고통으로 일그러져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실 때마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은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혼재했었다.

죽은 시신이라도 고향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던 부정(父情)을 현실적인 입장으로 무시하면서 아버지를 철저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엄마의 한풀이를 더는 들어줄 수 없었다.

오빠의 죽음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나의 궁핍함을 대신 풀어줄 구원자를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 자신만이 나의 구원자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에게 자식들에게 부모님에게 주변인들에게 더는 바라지 않는다. 아니 바라고 있으면서 바라지 않은 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나의 신념은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것으로 바뀌었다. 바라는 것조차 나의 욕심이고 욕심은 또 다른 고통을 잉태하는 씨앗임을 알았기에 나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뿐이다.

나는 부모님을 더 이상 아픔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주 보고 있다. 아버지가 큰소리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엄마가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해도 나는 여유로움으로 들을 수 있고 엄마의 아픔과 아버지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다.

오빠 대신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던 언니가 좋지 못한 미국경제 사정에도 다행히 취직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홀로된 며느리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노심초사하시던 부모님의 걱정이 조금 덜어져 다행이다.

이제 마무리를 하려 한다. 깨침은 순간이고 습관의 힘은 강력하다. 습관처럼 나는 자학하고 습관처럼 나는 허무해 한다. 순간순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분별성과 주착심이 나를 끌고 다니면서 고통을 만들어준다.

그래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나는 지금 행복하고 자유롭고 감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거라는 것을.

※다음호부터 유럽교구 프랑크푸르트교당 안명원 교도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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