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성탑(聖塔)* 찾아가는 길에 안개가 무겁게 밀려왔습니다. 마음이 한없이 어디론가 막무가내로 흐르다 멈춰 출렁거리는 것 같이 안개가 뭉클거리며 흐릅니다.

가을이면 자주 송대*에 안개의 강이 흐릅니다. 안개 속에서 소나무들이 옅은 회색을 두르고 아침을 맞고 있습니다. 안개비에 젖은 소나무 잎 끝에 대롱대롱 매어 달린 이슬방울이 툭! 툭! 어깨위로 떨어집니다.

먼 곳에서 바라보면 짙은 안개가, 다가서면 한 걸음 뒤로 살그머니 물러납니다. 안개 속에서는 소리 없이 다가서는 당신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개 속에서는 너무나 멀리 있는 것 같아도 실은 너무나 가까이 있는 당신을 느낍니다.

자주 이런 의구심이 듭니다.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보여 지는 것을 나는 두려워하는 것일까? '남의 눈에 비친 나'나 '내가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눈뜨면 좋겠습니다.

안개 속 저편 성탑 주변에 입선(立禪)하는 소나무들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물음표가 아닌 느낌표로 가슴을 칩니다.


이 안개가 사라지면
오늘도 곱고 투명한 가을일겁니다.

*성탑 · 원불교교조이신 소태산대종사의 유해를 모신 석탑
*송대 · 성탑 주변의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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