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나에게 잊지 못할 좋은 해다. 나는 1989년 11월1일부터 식당을 운영하게 됐다. 식당의 규모는 제법 커 우리 부부와 함께 직원이 많았다.

그 시절엔 독일에 한국식당이 적어서 식당 문을 열면 대부분 장사가 잘 되는 때며 새로운 동양 음식에 독일 사람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찾던 때라 식당이 잘 운영됐다.

식당일이 바쁜데 1991년에는 대종사님 탄생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자는 교무님 말씀을 듣고 준비를 하는데 힘이 들었다.

집사람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일이었다. 식당일이 바쁜데 누가 시장을 보며 해야할 일이 태산이라 갈 수 없다고 극구 반대를 했다.

그러나 나는 대종사님 탄생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고 싶었다. 날이 가까워 집사람에게 사정하여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독일을 떠나 한국에 도착하여 형제 집에 짐을 풀고 다음날 처음으로 총부를 방문하게 되어 상주선원으로 숙소를 정하고 총부를 순례하며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

행사장에 들어가 전국 각지에서 모인 교도들의 질서 정연하게 정해진 자리에 앉아 행사가 진행되는데 대산종사님께서 입장을 하시고 법사님들이 다 입장을 하셨다.
행사장은 성가 대각경축가가 울려 퍼지고 화창한 날씨에 하늘을 찌를듯한 기운이 뻗쳤다.

행사가 시작되어 대산종사님의 법설이 시작되고 있는 순간 하늘에는 일원의 해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모든 군중들은 환호를 하며 하늘을 쳐다 보았다. 나도 사진을 찍고 하늘을 보면서 그 때의 감격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그 순간 나는 우리 대종사님이 후천개벽의 성자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해무리는 행사가 끝날 때까지 있었고, 행사가 끝난 후 나는 상주선원에 돌아와 그 날 저녁은 잠이 오질 않았다. 감격의 순간, 가슴벅찬 감동이 있었기에 결국 밤을 지새우고 말았다.

다음 날, 버스로 영산성지로 가 삼밭재와 옥녀봉 자락을 거쳐 정관평을 걸으면서 선진님들의 사무여한 기도터, 구간도실터, 대종사님 생가, 정관평 뚝길을 걸어 영산선학대학교 기숙사에서 하루를 마감했다.

대종사님이 대각을 이루신 대각터를 보고 만고일월의 비문을 보며 이곳에서 대종사님의 대각 일성이 천지를 깨우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후천 개벽 성자가 탄생한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큰 감명과 나의 신앙에 대한 굳은 신념과 대종사님을 믿는 굳은 마음이 내 마음 속에 굳게 자리 잡았다.

성지방문을 마치고 독일로 돌아와 더 열심히 아침 좌선과 경전 봉독과 사경 등 시간이 있는 대로 공부를 했다. 바쁜 삶에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공부하는 재미로 그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있었다.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식 참석과 함께 영산성지순례는 나에게 법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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