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바꿀 수 있는 종교연합운동

▲ 11일 중앙총부 법은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G20 문명, 문화, 종교간 대화-종교협력 운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조강연을 듣고있는 참석자들.
▲ 종교간의 이해 교육자, 루신다 모서.
"종교간 연합운동을 통해 전 세계를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상호의존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종교간의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서로 화합하게 될 것이다."
11월11일 루신다 모서 종교간 이해 교육자가 '종교협력 운동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세미나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번 학술마당에서는 그의 기조강연을 요약 정리했다.

종교협력운동의 세 가지 사건

종교간의 다양성은 중요하다. 전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종교운동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종교가 그동안 많은 대화를 통해 종교연합이 풍요롭게 진행되어 왔다. 종교간, 종교협력기구들의 협력에 대해 많은 의견을 제시했는데 종교협력운동과 관련된 역사적인 세 가지 사건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1894년 시카고 운동을 통해 현대 종교운동이 만들어졌고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 종교운동은 종교의 대표들을 규합했기 때문에 더욱 특별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인 생각에 대해 비판적인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변화가 필요했다. 이때부터 많은 성직자들과 일반인들은 다양한 종교에 있어서 다양한 부분을 수행할 수 있었고 영적으로 풍요를 일으켰다.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인 생각이다.

둘째 1962년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한 선언에 관한 것이다. 종교의 자유, 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 그리스도교 교육을 다룬 3개의 선언은 다른 종교에 대한 수용성을 표방하는 그러한 법령이었다. 성공회에서 이러한 것을 함께 따르기 시작했고, 어떤 종교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보다 더 발전적 자세를 보여주었다. 기독교내에서 차이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교간의 이로운점과 차이점의 의견을 보다 더 수용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셋째 2007년 종교간 대화와 변화를 위한 무슬림 대표들의 모임인데 이 운동은 기독교단체들이 격렬한 반응을 내놓았다. 이 운동과 관련해 네 가지 국제회의가 있었고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공동의 세계라 하는 것은 일종의 현상으로 빠르게 발달하게 되었고, 양자 간의 대화가 종교와 세계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었다.

지역·국가·대륙에서의 종교운동

지역적인 차원과 국가적인 차원, 대륙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종교운동에 대해 몇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종교간 문제를 다루는 특정 오피스들이 생겨났다는 것, 독립적인 국제기구들이 생겨나 공동행동을 촉구했다는 것, 신학교등과 연결된 여러 가지 기관들 그리고 다양한 구조의 종교기관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기관들에서 종교간 운동들을 위해 다양한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종교간 평화운동에 있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장애물은 많다. 종교간 운동에 자금을 제공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굉장히 적어 대부분 자발적인 자금에 의존해야만 되는 한계가 있다.

재원이 한정되다 보니 같은 재원을 주고 경쟁하는 상황이 자주 봉착하게 된다. 종교간운동이 공통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보다는 일종의 친교모임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과 종교간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자신의 교리를 고수하는 부분도 있다.

여러 종교전통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럴 경우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종교간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종교가 여러 가지 다른 것을 포함하면서도 지역사회를 의미 있는 사회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많은 사회학자들이 종교간 대화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대화라는 것이 여러 사람들 간의 논의 하는 것과는 다를 필요가 있다. 그리스에서 서로 이야기 한다는 뜻을 가진 다이아(dia)가 두 명만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다이알로그(dialogue), 대화라는 것은 다자간의 대화다. 토론에 있어서 다른 참가자들을 이기자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동등한 자격에서 함께 관용을 베풀자는 뜻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다이알로그는 좀 더 감정적인 것이 표현되는 시간이 줄어들고 함께 참아가는 과정이다. 대화라는 것은 서로간의 관계를 강력하게 하면서도 문제를 해결해 가는 방법이 된다.

그렇다면 종교단체들이 서로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다원주의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언어, 여러 가지 종교를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이웃들을 함께 아우르는 것이어야 한다. 종교적인 차이에 대해서도 서로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용어에 있어서 보다 더 정리가 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용어가 오히려 혼동을 일으킨다. 적대주의가 종교간 운동에 있어 실제적으로 장애가 되고 있다. 우리의 종교적인 믿음과 우리의 이상주의를 이야기 하면서 타종교를 이야기할 때는 이것을 나쁘게 형성화된 것으로 이야기하는 적대주의 역시 문제가 된다. 종교간 화합운동이 정의로 나아가는 관문이다. 협동과 협력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연관된다. 이 뿐만 아니라 교육이 중요한 해결책이 된다.

다양한 종교간 화합운동 해 가야

학계에서도의 종교간 화합에 대한 움직임도 필요하고 종교간 화합운동도 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여야 한다. 특히 화합운동을 모르는 사람들은 가르칠 필요가 있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교육을 시키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이러한 경험적인 교육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현재 여러 가지 대화를 통해서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고 서로 화합시키는 그런 교육운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종교적으로 다른 젊은이들에게 함께 모여 다양한 배움의 장들을 열어 가고 있다.

종교간 대화와 관련해서 신문보도, 언론보도가 굉장히 중요하다. 언론을 통해 극단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으며 종교가 일치와 화합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종교간 화합운동을 진행하게 될 때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웹사이트, 트위터, 인터넷을 통해 종교간 협력운동을 효율적으로 해갈 수 있어야 한다.

종교간 교량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의 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교육이나 언론을 통해 종교간의 차이를 알게 되고 극복해 갈 수 있다. 우리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가 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으며 상호 의존하고 있는 것이 미래에도 중요하다.
도시화로 인해 테러, 범죄 등 여러 가지 위협을 다루기 위해서는 종교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하고 종교간 협력운동이 빠르게 진행돼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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