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만 해도 국내 경제적 상황과 여러 가지 이유로 외국에 나가는 여건이 참 힘들 때였다.
그 어려웠던 당시에 최성덕 교무는 김덕성 정토회원과 세자녀를 데리고 유럽교화의 큰 서원을 세우고 이역만리 타국으로 오게 됐다.

독일은 대부분의 국민인 10명 중 7명이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로 나뉘어져 있어, 독일 교화 여건은 그리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성덕 교무는 외롭고 힘든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용기를 잃지 않고, 교화 할 수 있는 것은 김덕성 정토회원과 세 자녀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최 교무의 장녀인 고은은 매주 법회 때마다 피아노 반주를 도맡아 하며 법회 진행에 활력을 불어 넣어줬고, 나머지 자녀들도 어린이법회를 진행하며 교화의 미래를 만들어왔다.

정토회원은 어려운 교당의 경제상황과 환경 속에서 최 교무와 교당의 안팎에서 살림을 책임져 온 가족이 독일 교화에 정성을 쏟았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대학생 출장법회와 프랑크푸르트교당 교화에 초석을 마련하게 됐고, 이런 정성들이 모였기 때문에 오늘날 프랑크푸르트교당이 존재하고 교화되고 있음을 무엇보다 정토회원과 세자녀들에게 감사한다.
프랑크푸르트교당의 교도들은 외국의 어려운 환경과 타 종교의 극성 속에 새 회상 원불교 교도로서 누구보다 자부심을 갖고, 최원심 교무를 모시고 오늘날 열심히 공부하며 교화에 힘쓰고 있다.

특히 최원심 교무는 독일에 부임한 즉시 독일어 공부에 열심히 노력하면서 앞으로 자신이 독일 교화에서 해야 할 일들을 실현하고자 노력하셨다.
독일의 언어·문화·국민성 등의 빠른 이해를 위해 동분서주 하시는 모습은 교도들에게 큰 자극제였다.

해외 교화는 정말 외롭고 힘들고 어렵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꼭 해야 하는 교화이다. 지금 세대는 급변하고 있다. 세계는 일일 생활권이 되어가고 있고, 문화적 장벽이 없어진지는 오래이다.
세계의 일원화가 점차 진행되고 있는 이때에 우리 교단도 하루 빨리 해외 교화에 큰 힘이 되어 줄 인재들을 길러내는 데 총부의 교무님들과 뜻 있는 교도님이 적극 힘을 합해야 한다.

이는 해외 인재 양성에 정성을 더욱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보통 10~15년을 잡아야 하는 장기간이기 때문에 미리 인재 양성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불교학과 1~2학년의 예비교무들 중 해외 교화에 뜻이 있는 사람을 추천받아 여름이나 겨울 방학 기간에 현지에 보내 현지 실정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이 서원한 해외 교화를 할 수 있겠는가를 재차 검토하고, 자신이 서원을 세운 사람들로서 원불교학과 졸업과 동시에 현지 유학을 보내서, 각 나라가 지니고 있는 언어·문화·국민성을 배우고 익혀 현지인과 접촉하며 자연스럽게 현지인 교화가 이뤄져 나가야 세계가 일원화가 될 것이다.
이 때 우리 교법이 세계화 일원화가 돼 일원의 극락정토가 되리라 믿는다

※ 다음호부터 중앙교구 익산교당 이다성 교도가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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