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우 반포교당 교도회장

1. 강자는 도덕성을 갖춘 강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강자이면서 약자

신묘년의 새해가 밝았다. 해마다 이 때쯤이면 종법사님이 내리시는 신년 법문을 정독하고, 그 의미를 새겨 새로운 한 해의 생활지침으로 삼곤 했다.
올해 종법사님은 "상생과 평화의 길"이라는 법문을 내리셨다. 지역·계층·이념·세대·남녀·노사간의 대립이 끊이질 않아, 국민적 화합이 요구되는 시대적 기운에 대응한 법문이시리라.

상생과 공존은 이 시대의 화두이다. 그동안 우리는 갈등과 대립을 이해와 화합, 상생과 공존으로 바꾸기 위하여 상호간의 소통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현재 만족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강자는 강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고, 약자는 강자의 지위에 오를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강자와 약자가 서로 어우러져 상생과 공존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이 바로 대종사님이 '강자 약자 진화상의 요법'을 말씀하신 이유이고 종법사님이 '상생과 평화의 길'이라는 법문을 내리신 이유일 것이다.

종법사님은 '도덕성을 갖춘 강자', '진급하는 약자', '강자 약자의 상생'의 3가지를 말씀하셨다. 3가지 모두 하나하나의 뜻을 의미하고 가슴에 새겨 평생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지만, 나는 올 한해의 실천 다짐으로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말씀을 첫 번째로 꼽고 싶다.

'영원한 강자가 되려면 지금의 강이 있도록 한 ▷근본적인 은혜를 발견하고 실력을 쌓아가며 ▷결실을 나누고 ▷변화에 대응하는 요건을 지녀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강자이면서도 약자이다.

한편, '강자는 약자에게 자리이타의 법으로써 약자를 강자로 진화시켜야 영원한 강자가 된다'는 것이다. '은혜를 무시하고 약자를 보호하는데 인색하면 결국 약자로 전락한다'는 말씀이 경고처럼 다가온다.

약자는 내가 속한 집단에도 있고, 집단 밖에도 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약자들이 관심밖에 소외되어 있는가? 약자인 입장에서 그들이 바라는 바,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들을 강자로 가게 하기 위해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나의 활동시간과 능력의 몇 %를 이 같은 일에 사용하고 있을까? 갈수록 여기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자책을 해 왔는데, 종법사님의 법문이 다시 나의 가슴에 경종을 울려 주신다. 이러한 의무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젖어들고 있었는데….

최호준 장충교당 교도

2. 약자는 진급하는 약자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이미 강자의 요소 내재

경산종법사께서는 신묘년의 신년법문을 통하여 최초법어 중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을 부연하여 오늘의 세계와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셨다. 대종사님의 최초법어는 20세기 초 갈등과 반목이 편만했던 세계의 병증을 진단하고 그 처방으로서 내놓으신 법문이지만 오늘에도 여전히 혜광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강자약자의 진화상 요법은 사회 발전의 법칙이면서 개인 삶에 대한 지혜의 길도 밝히고 있다. 대종사님은 법신불 일원상을 믿음으로써 모두 그 품에 안길 수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강자와 약자를 준별(峻別)하시고 약자가 스스로 진급을 통하여 강자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권면하셨다. 물론 강약의 구별은 정신, 지식, 건강, 재력 등 다양한 기준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어느 방면으로든지, 개인이든 사회든, 약자는 강자되기를 지향해야만 진급과 발전이 있을 것이다.

약자의 도를 개인 삶에 투영해 보자. 강약 구별의 다양한 기준을 고려한다면 우리 개개인은 강자인 경우보다 약자인 경우가 많다. 팔방미인(八方美人)이라는 말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한 사람이 모든 방면에서 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강자의 도보다 약자의 도가 우리에게 더 절실할 수도 있겠다. 흔히들 약자들은 약자의 상태가 영속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자신이 강자일 수 없는 어떤 여건을 탓하기도 한다. 또는 강자에 대한 적의와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애써 신포도의 이솝 우화처럼 강자의 입장을 폄훼하기도 한다. 그래가지고서는 세월이 지나도 약자의 입장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더라도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약간은 성공적으로 살아왔다고 여기다가도 까닭 모를 열등감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난 데 없는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성불의 길은 아득하기만 하고 적공의 크기는 미약하기만 하다. 금년 신년법문을 접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다짐을 새겨 본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에게 이미 강자의 요소가 내재하고 있음을 깨닫고자 한다. 여건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는 어린 마음을 버리려 한다. 그리고 법문대로 강자의 장점과 요건을 배우고 실천하는데 정성을 들이려 한다. 스승님과 선진을 본받으려 배움을 놓지 않으며 이 세상의 모든 약·강자들과 상생의 인연을 가꾸어 나간다면 나에게도 강자를 향한 진급의 길, 그 탄탄대로가 활짝 열리리라.

최서연 외국인센터 교무

3. 강자와 약자가 서로 상생해야 평화가 실현됩니다

인간의 욕심이 평화 저해 올바른 상생작용 필요


경산종법사께서 지적하셨듯이 지금 세상은 경쟁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경쟁은 물질에 사로잡힌 세상의 특징입니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은 지나친 경쟁으로 병든 사회를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더 높은 지위에 올라 더 많은 재산과 물건, 권력을 갖고 더 많은 편리와 풍요를 누리고 있거나 누리려 하는 사람들은 그 방법이 바르고 그르고를 살피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다보니 파란고해의 세상이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경산종법사께서 강자 약자가 상생하는 사회적 여건을 조성해가야 한다고 하신 것은 적절한 처방이라 할 것입니다.

사회적 여건 조성에는 병든 사회를 진단하고 치료하려는 자각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부도덕한 강자들이 양심을 스스로 회복한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회복하도록 국민이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살아있는 강에 포크레인과 폭약을 들이대며 파괴하는 것을 살리는 사업이라고 하며 온갖 불법도 마다않고 강행하기에 4대 종단을 비롯한 국민 대다수가 이를 지적하고 공사 중단을 계속 요구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사회나 정부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일을 추진할 때는 '아니다'를 주장하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지금 세상을 살펴보면 가장 약자는 산과 강, 들, 바다 등의 자연이고 인간이 강자인 것 같습니다. 자연은 그대로 그러하게 있음을 본성으로 하건만 인간의 욕심은 자연을 개발하여 이득을 취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자리타해적인 행위가 계속될 경우 어떤 결과가 올지는 과거로부터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가까운 나라 중국의 역사를 봐도 치수사업을 크게 일으킨 왕조는 결국 모두 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사회와 국가가 바른 길로 가도록 하는 적극적인 활동이 상생입니다. 상생이 제대로 작용할 때, 평화가 올 수 있습니다. 강자들의 부도덕함은 여러 방면의 '거짓말'과 '폭력'으로 증명됩니다. 우리는 사리연구를 잘 하여 거짓을 알아차리고 이에 속지 않으며, 폭력의 부당함을 강력히 지적하여, 강자들이 도덕을 회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도덕이 있는 강자와 도덕을 회복한 강자라야 약자를 배려하고, 이런 강자를 약자가 선도자로 삼아 진급해야 평화를 이룩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부디 도덕을 갖춘 강자 약자의 상생활동으로 정의와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가길 심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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