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원불교와의 인연은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서 시작이 되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우리 집 거실은 할머니의 열반으로 며칠째 경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천도재를 지내기 위해 중앙교구 모현교당을 처음 가게 되면서 원불교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학생 법회에 참석하게 됐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교당에 다니셨던 것도 나만 빼고 모든 식구가 입교한 사실도 몰랐다. 기억 속 할머니는 항상 편찮으셨기에 법회에 나가지 못하셨으리라….

그렇게 시작한 원불교와의 인연이 15년째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원불교는 나에게 15년 동안의 즐거움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원불교를 알아가는 재미에 학교법당과 교당을 일주일에도 몇 번씩 오갔다.

법회 준비하는 즐거움, 단모임하는 즐거움, 교무님 이야기 듣는 즐거움, 훈련나는 즐거움. 이러한 즐거움은 대학교 진학 후 원불교 동아리를 통해 이어졌고 그 안에서 나는 법연으로 뭉쳐진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정신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다.

또한 이곳 저곳 여행을 하면서 다른 나라에서 열심히 교화하고 계시는 교무님들도 뵙고, 또 여러 곳의 교당에서 법회도 보며 원불교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느끼게 됐다.그렇게 멋진 시절을 보낸 후, 학업을 마치고 사회인이 된 지금, 시간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법회에 소홀하게 됐다.

자연히 마음공부도 뒷전으로 밀려나게 되고, 일에 지쳐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생활에, 또 엇갈리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사람들은 내 생각 같지 않은지, 사람들은 왜 내가 이제까지 배웠던 그 멋지던 원불교법과 다르게 행동하는지….

마음속에는 실망이 화로 변하여 쌓여만 갔다. 그렇게 마음속에 쌓인 화가 최고조에 이른 순간, 우연히 책상 앞에 붙여놓은 일상수행의 요법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마음이 저릿하고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대종사님께 내 마음을 들킨 듯 부끄러웠다. 법회 때마다 외우던, 지금껏 수백 번은 넘게 읊조리던 일상수행의 요법 한 구절이 그때만큼 마음에 닿았던 적이 없었다. 왜 그렇게 원망만 했는지, 감사란 말은 언제 해봤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모든 일들이 나의 성장을 위한 단계임을 잊었던 것이다. 지난 마음을 반성하게 되면서 불과 몇 분전에 비해 순간 마음이 커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진정한 원불교법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듯하다. 단순히 재미로만 교당을 다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불만만 쌓였던 지난 몇 년을 지나, 지금은 교전 한 구절 한 구절, 설법 한 말씀 한 말씀에 마음이 움직이고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법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날이면 사이버 교당을 찾아 설교를 듣고 마음공부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공부의 끈을 놓지 않으려 노력한다.

요즘 다시 천천히 읽고 있는 대종경은 어쩜 그렇게도 마음을 떨리게 만드는지, 내 머릿속에 깊이 법문을 저장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세상에 나와 가장 큰 감사를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가족과 원불교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육체적으로 세상을 보게 해 준 가족, 그리고 정신적으로 세상을 알게 해 준 원불교. 이보다 더한 감사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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