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96년 새해, 종법사님의 신년법문처럼 정당한 강자로 진급하기 위한 마음수양으로 내가 다짐한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 '주착심 없애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마음 속의 화 표현하기'이다. 그중에서도 '화 표현하기'는 항상 마음속에 응어리처럼 맺혀있는, 아직까지도 풀지 못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나는 나를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다','성실하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착함과 성실함은 절대적인 좋은 단어이기에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더 착하게, 더 성실하게 보이려 노력했다.
기분이 나빠도 괜찮은 척, 하기 싫은 일도 좋아하는 척, 화가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일이 복잡해지고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 항상 내 대답은 예스였다. 그렇게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좋아했고 또 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것이 나의 모습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졌다. 내가 예스맨이 되고 진심을 숨기면서 화를 참을수록 내 안에 독이 쌓여가고 있었다.

며칠 전 친구와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었다. 사실 다툰 것도 아닌, 그렇다고 서로 불만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내가 그 친구한테 아무 이유없이 툴툴대는 그런 모양새였다. 그 친구는 원래 내게 이것저것 부탁하기를 좋아했고, 나도 그때마다 스스럼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곤 했다.

부탁을 하나하나 들어주면 줄수록 고마워하지 않는 그 친구에게 점점 나는 화를 느껴왔었지만, 대부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참아왔었다. 그러다 얼마 전 아주 사소한 부탁으로 그 화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만을 말할 지도, 화를 낼 때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어떻게 말을 시작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화를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속은 답답해서 말은 해야겠고 어떻게 표현할지는 모르고…. 정말 생각해보면 그때 친구와 대화하는 내 모습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말은 빈정대고 표정은 어색하게 웃고 있었으니 오죽했으면 내 말을 듣고 있는 친구에게 미안했을까.

권도갑 교무님의 마음공부 이야기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진심(嗔心) 즉, 분노는 육신에서 배설되는 분뇨와 같아 배출하지 않으면 기운이 막히고 화병을 얻어 마음의 변비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하셨다.

희·로·애·락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본능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화를 참는 것이 남에게는 순간의 미덕이 될지언정 나에게는 막힌 기운이 쌓여 독이 되었음을 몰랐던 것이다. 화를 숨기는 것은 나의 마음을 내가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마음과 같이 '화'라는 것도 나의 소중한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숨기면 남도 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진실된 관계가 형성될 수 없다. 또한 한 번 화를 참으면 영원히 참는 사람으로 남아야 할지도 모른다.
대종사님께서는 수행품 37장을 통해 희·로·애·락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곳과 때에 마땅하게 써서 자유로운 마음 기틀 없이 운용하되 중도에만 어그러지지 않게 하라고 하셨다.

마음이 일어나는 당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그 마음을 표현하기. 원기96년에 이 공부 한 가지만 제대로 해도 나는 진급하는 강자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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