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6세기, 가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는 19세에 야쇼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았으며, 왕자로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왕궁가에서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평소 품었던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의 해결 없이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대결단을 내린다.

29세 되던 해에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택하였다. 어둠을 뚫고 애마를 타고 왕궁가를 빠져나온 것이다. 신흥국가인 마가다로 향하였는데, 그곳에는 많은 종교와 사문들이 운집하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위성에서 출발하여 카빌라바스투에 이르고, 쿠시나가라와 바이샬리와 갠지스 강을 지나 마가다국으로 들어가 왕사성에 이른다.

싯다르타는 당시 고귀한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행의 출가를 단행한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어느 날 동서남북의 사문유관을 통해 생로병사가 덧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생무상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내왔는데, 태어나는 아이의 울음소리, 힘들게 거니는 노인, 병에 신음하는 사람, 사자의 슬픔을 목도하고 인생의 허무함에 출가의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고행지인 가야라는 곳의 한 보리수 밑에서 명상을 하다가 마침내 진리를 깨달아 불타가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 때의 일이었으며,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은 같이 고행했던 다섯 비구들에게 바라나시의 녹야원에서 최초법어로서 고집멸도라는 사성제 법문을 설하였다. 이어서 애욕 및 고행의 양극을 피하여야 한다는 중도의 팔정도를 설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초전법륜인 것이다.

이 법륜은 오늘날 불자들에게 삼세인과와 육도윤회, 십이인연이라는 불법으로 다가와 삶의 오욕과 무명을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설산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불타는 혜안으로 인간의 고통을 극복토록 하고 해탈의 길로 인도한 사바의 성자가 된 것이다.

1930년 5월25일 밤, 소태산대종사 말하길 "옛날 서가세존은 받은 위를 내던지고 바둑판을 지고 유성 출가하지 아니하였는가? 그 때문에 변두리 서역 인도국 정반왕이 전 세계에 드러나지 아니하였는가? 너희들에게 부탁하노니 명심하라. 이 시대는 정신을 온전히 가져 일심이 주장되는 시대이다"(〈원광〉 55호 이호춘)고 하였다.

부처님의 유성출가에 대하여 이공주 종사는 "삼계대사 사생자부 석가모니는 왕궁의 태자위도 마다하고 유성출가하여 설산에서 6년간 고행을 하였거든…. 이 알량한 속세의 영화에 탐착함인가?"며 사바세계의 번뇌를 벗어나고자 고백의 일기에서 기리고 있다.

우리는 연원불인 부처님의 유성출가의 거룩한 뜻을 새기면서 생로병사와 부귀영화에 집착하는 삶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사는 불자들의 신행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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