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임병학 교수] '서품' 11장에서는 "방언 일이 준공되니 단원들이 서로 말하기를 '처음 시작할 때에는 평지에 태산을 쌓을 것같이 어려운 생각이 들더니, 이제 이 만큼 되고 보니 방언은 오히려 쉬운 일이나 앞으로 도 이룰 일은 얼마나 어려울꼬' 하는지라, 대종사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지금은 도 이루는 법을 알지 못하므로 그러한 말을 하거니와, 알고 보면 밥 먹기보다 쉬운 것이니 그 넉넉하고 한가한 심경이 어찌 저 언 막기 같이 어려우리요. 그대들이 이 뜻이 미상하거든 잘 들어 두었다가 공부 길을 깨친 뒤에 다시 생각하여 보라'"고 했다. 즉, 단원들은 '앞으로 도 이룰 일은 얼마나 어려울꼬'하고, 대종사는 '알고 보면 밥 먹기보다 쉬운 것이니'라고 해, 대비되고 있다.

이를 〈주역〉에서는 험조지도(險阻之道)와 이간지도(易簡之道)로 논하고 있다. 먼저 '계사하' 제12장에서는 "무릇 건도(乾道)는 세상의 지극히 강건한 것이니 덕을 행함이 항상 쉬움으로 험한 것을 알고, 무릇 곤도(坤道)는 세상의 지극히 순한 것이니 덕을 행함이 항상 간능으로 막힘을 안다"라고 해, 건곤(乾坤)의 진리를 행하면 쉽고 간단하지만(이간, 易簡), 알지 못하면 험하고 막힌다(험조, 險阻)고 했다.

또 '계사상' 제1장에서는 "건도로 쉽게 알고 곤도로 간단하게 능하니, 쉬우면 쉽게 알고 간단하면 쉽게 쫓는 것이고, (중략) 쉽고 간단함은 세상의 진리를 얻은 것이니, 세상의 진리를 얻는 것이 자기 본성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해, 이간은 건곤(乾坤)의 진리를 그대로 본받는 것이고, 자신의 본성 가운데 있다고 했다.

단원들은 '어렵다'하고, 대종사는 '아주 쉽다'한 것은, 바로 중생과 부처의 안목이 다름이다. 중생들은 매일 진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스스로 지은 망념이나 탐·진·치의 욕심으로 힘들고 어렵다 하고, 부처는 진리를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쉽다 하는 것이다. 또 '이간으로 험조를 안다'는 것은 진리를 통해 중생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고, 부처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촉품' 12장에서는 공부에 어려움이 있지만, "수도인이 마음을 굳게 세우고 한 번 이루어 보기로 정성을 다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쉬운 일이 되어질 것이요,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안하려는 사람과 하다가 중단하는 사람에게는 다 어려운 일이 되나니라"라고 해, 진리를 깨우치고 실천하는 이간(易簡)의 길은 각자의 마음에 있다고 했다. 

마지막에 '공부 길을 깨친 뒤에 다시 생각해보라'고 한 것은 방언공사의 노고나 도학의 어려움을 논한 것을 넘어서, 각자의 마음공부에 물음을 던진 것이다. 즉, 진리를 밝힌 대종사의 가르침에 따라 쉽고 간단한 도를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본성에 어두운 심(心)봉사로 험난하고 막힌 길을 살아가는가? 묻게 된다. 우리는 제11장의 단원들과 대종사의 일을 통해 '나는 대종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를 헤아려 보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원광대학교·도안교당

[2018년 11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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