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심지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를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며 우리가 조석으로 외고 있는 일상수행의 요법 문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문장 전체 구조와 몇몇 구절에 문법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위의 문장을 단순화하면 '심지는 요란함이 없다.' 그리고 '심지는 요란함이 있어진다'이다. 이 문장만 봐도 벌써 어색함을 느낄 수 있는데, 이 문장에는 주어처럼 보이는 단어가 두 개 나온다. '심지'와 '요란함'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어가 두 개 나올 때 뒤에 있는 주어는 문법상 '보어'라고 한다. '주어를 보완하는 말'이다. 그런데 보어가 올 때는 서술어가 한정된다. 그 서술어는 주로 '아니다'와 '되다'이다. 예를 들면 '과자는 밥이 아니다' 또는 '내 친구는 선생님이 되었다'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한정된 서술어가 오지 않으면 보어를 쓸 수 없으므로 '심지는 요란함이 없건마는'과 같은 문장은 문법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 그 대신 서술어로 '없다'와 '있다'를 사용했으므로 처소를 나타내는 조사인 '-에'가 있어야 된다. '심지(에)는 요란함이 없건마는', '심지(에) 요란함이 있어진다.'

'경계를 따라' 역시 애매한 구절이다. '따라'는 조사로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늘따라 기분이 좋다'는 말처럼 '여느 때와는 달리 별나게 또는 특별히'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럴 때는 주로 '시간'을 나타내는 말에 '띄우지 않고' 붙여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동사로도 쓰인다. ① 남의 뒤를 좇다 : 그를 따라 방에 들어갔다. ② 남을 좋아하여 붙어서 좇다 : 개가 나를 많이 따른다. ③ 다른 일과 더불어 일어나다 : 경제 개발에 따른 소득 격차. ④ 관례나 법규 따위를 본떠서 하다 : 법에 따라 판정한다. ⑤ 목적이나 입장에 각기 의거하다 : 학자에 따라 해석이 다르다. 

'경계를 따라'에서 '따라'는 형태로 봐서 조사가 아니라 동사이며, '경계를'이라는 목적어를 취하는 타동사이다. 목적어를 취하는 형태로 봐선 ① 번과 ② 번의 용례와 비슷한데, 심지가 경계 뒤를 좇아가거나 경계를 좋아하여 붙어 좇는다는 건 좀 이상하다. 도리어 '상황에 따라, 경우에 따라, 필요에 따라, 기준에 따라, 종류에 따라, 특징에 따라, 관계에 따라'처럼 '나누어지다, 운용하다, 구별되다, 달라지다, 본받다, 유연하다, 즉흥적이다(기분에 따라)'와 같은 뜻과 더 가깝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형태로 봐서는 무언가의 뒤를 좇아 따라 가는 타동사의 형태이지만, 실제 용례는 '적합성, 상황성, 필요성, 분별성, 유연성, 즉흥성'의 의미를 더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경계를 따라'는 '경계에 따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문법과 내용면에서 맞고, '경계를 따라'를 고수할 경우엔 '경계를 따라가면(또는 경계에 끌려가면)'과 같이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나도록 쓰면 어떨까 한다.

다시 한 번 문법에 저촉됨이 없이 문장을 구성한다면 다음과 같다. '심지에는 원래 요란함이 없건마는 경계에 따라 있어지나니, 그 요란함을 없게 하는 것으로써 자성의 정을 세우자.' 

/원경고등학교

[2019년 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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