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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문답] "교화단 살아나야 사실적 도덕의 훈련 가능하다"
[교리문답] "교화단 살아나야 사실적 도덕의 훈련 가능하다"
  • 유원경 기자
  • 승인 2019.08.14
  • 호수 1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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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혁 영산선학대학교 총장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의 관계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달라
대종사 당대에 구인선진은 창생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올릴 때 낮에 하지 않고 밤에 기도를 올렸다. 그 이유는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사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구인제자들에게 생활을 떠나서 다른 특별한 일을 시킨 것이 아니었다. 일상생활 속에서 그대로 병행하는 기도를 시작했고 초창기 법인성사의 역사는 그렇게 이뤄졌다.

모두 알다시피 대종사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공부와 사업을 하도록 공부 길을 밝혀 줬다. 장사하는 사람은 장사를 하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공장에서, 농부는 농사일 속에서 모두 부처가 되는 길을 지도했다. 하여 재가출가를 크게 구분 짓지 않았고, 생활을 깨뜨리지 않는 공부를 실행하도록 한 것이다. 

대종사는 일상 속에서 부처님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체득하는 법을 반복훈련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훈련은 평소 생활 속에서 단련하는 상시훈련과 기간을 정해 집중해서 하는 정기훈련으로 구분하는데, 정기훈련은 11과목을 정하여 일원의 진리와 우리의 생활을 완전히 합치시키는 자세한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공부를 시작한 지가 오래되지 않아 평소 생활 속에서 어떻게 마음을 작용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설사 안다고 해도 기존의 습관이 굳어 쉽게 잘되지 않을 수가 있다.

예를 들어 계문 중 '술을 마시지 말며'를 놓고 술을 끊어야겠다고 다짐을 하건만 실행이 잘되지 않을 때 무작정 계문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기훈련을 통해 왜 마시지 않아야 하는지, 마시고 싶을 때 어떻게 그 마음을 멈추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우고 더 나아가 회화나 강연을 통해 다른 도반들의 경험담에서 해결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 정기훈련은 상시 기간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을 잡아가고 또한 고민되는 문제를 제출하여 해결하는 기간이며, 도반들과 함께 연마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정기훈련 기간에는 상시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다 드러내 놓고 깊이 연마해 해답을 얻어 가는 소중한 시간이다. 상시훈련은 생활 속에서 일원의 진리에 맞게 해보는 연습의 장이다. 이때는 잘 안되는 경우 그냥 넘기지 말고 일일이 메모하여 교당에 가게 되면 그때를 정기훈련 시간으로 알아 지낸 일을 일일이 문답하여 바른 공부 길을 잡아가야 할 것이다.

교화단에서 문답 감정의 기능이나 상시점검 등의 훈련지도가 살아나려면
아주 단순한 것인데, 가령 염불을 공부할 때 염불은 수양과목 중 하나며 훈련과목이다. 훈련이란 반복해서 계속 익혀가는 것인데, 이론적인 교리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염불은 실지 마음을 멈추는 훈련이다. 이를 통해서 안정을 얻고 생활에서 힘이 돼야 하는데, 마치 요리하는 사람이 실지 요리는 해보지 않고, 요리책을 암기하고 있는 것처럼 공부하고 있는 면이 많다.

수행편의 모든 교리는 생활 속에서 반복하며 단련해야 하는 훈련이다. 우리가 늘 이론적으로 가르치고 직접 해보는 반복훈련이 뒤따르지 않으니 의미가 없어져 버린다.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우고 목수에게 목수 일을 배우듯 하나하나 육근으로 익혀가는 훈련이 돼야 하며, 대종사의 가르침에 따라 지도와 점검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장 교무들이 먼저 이러한 훈련으로 교도들을 훈련시키고 이들을 단장 삼아 교화단을 운영해야 교화단 활동이 문답 감정과 실지 훈련하는 방향으로 변화할 것이다. 현재 교당의 교화단이 살아나려면 먼저 각 교당에서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이 살아나야 하며, 교당이 교도들의 정기·상시 훈련지로 거듭나야 할 것 같다. 
 

상시훈련은 생활 속에서
일원의 진리에 맞게
해보려는 연습의 장

상시공부 점검하지 않으면 
정기훈련 적공 어려워
이론적인 생각 아닌 
실지훈련으로 증득해야
대종사를 모시듯 
마음에 심사·심우의 
지도와 점검 필요

 

심사심우(心師心友)의 본뜻은 어떤 것이며, 왜 심사와 심우를 강조했는가
심사심우는 마음을 알고 마음 사용법을 아는 스승이나 친구를 말한다. 다른 사람이 마음 사용하는 법을 보고 배운다면 훨씬 더 배우기가 쉬울 것이다. 자라면서 보고 먹고 말하고 하는 것 등은 다 부모를 통해서 쉽게 익힌다. 그것이 훗날 진리를 알고 진리에 맞는 생활을 길들일 때 혹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진리를 알고 진리대로 생활하는 스승님이 계시거나 동지가 있다면 너무도 쉽게 마음공부 방법을 체득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심사심우도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출가의 인연으로 이렇게 만나서 제생의세의 서원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너와 나로 구분지으며 둘로 나눌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정말 창자를 이을만한 도반 셋은 가져야 한다는 대산종사의 법문도 있다. 그렇게 법으로 도반의 인연이 맺어져 창자를 이을만한 이가 있다면 그가 곧 심우라 할 수 있다. 

심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종사를 심사로 모시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가까이 계시지 않으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대종사의 법을 이어 교단을 이끄는 종법사가 바로 심사이지만, 항상 묻고 배우며 지도받을 수 있는 심사가 가까이 있다면 우리의 공부는 날을 기약하고 빠르게 진척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마음공부의 대가 스승님을 모시고 공부해야 하며, 마음공부 하는 도반을 가까이해야 한다.

주산종사는 대종사에게 마음을 올리는 헌시를 바쳤다. '헌심영부 허신세계 상수법륜 영전불휴(獻心靈父 許身世界 常隨法輪 永轉不休) 마음은 스승님께 드리고 몸은 세계에 바쳐 일원의 법륜을 힘껏 굴리며 영겁토록 쉬지 않겠나이다'라는 시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고 지냈던 적이 있다. 심사를 두고 공부 길을 잡는다면 마음공부가 한결 쉬운 일이 되기도 한다. 

심우도 똑같다. 평소에 화를 내지 않고 언제나 밝게 웃는 어느 도반이 있었다. 나는 그 도반이 좋았고 도반의 그런 모습을 본받고 싶어 가까이 지냈다. 심우로 충분한 도반이었다. 또 어떤 도반은 후배건 선배건 인연 챙기기를 잘했다. 이런 모습들을 가까이서 보고 배울 수 있었으니 그들이 곧 심우 아니겠는가. 이것이 자기를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게 만들어 가는 공부다.

불교는 템플스테이 등으로 오히려 바쁜 생활 속에서도 공부가 되는 생활 종교가 되어가는 듯하다.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생활과 수도가 둘이 아닌 산 종교를 만들어 갈 수 있나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종교의 모습은 교단 초창기 대종사의 본의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고 결국은 교화단으로 귀결될 것이다. 교도들의 훈련을 능률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으로서의 교화단, 세상 모든 사람에게 이 법을 전하는 도구로써 교화단을 다시 생각해 본다. 

말하자면 우리는 교화단으로 모두를 살려내야 하고 모두를 성불시킬 수 있어야 한다. 불교가 템플스테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것은 우리로 말하면 일종의 정기훈련이다. 우리 역시도 정기훈련을 진행하고, 이와 함께 상시훈련을 병행하는데 그 상시훈련 중심축이 교화단이고 수도와 생활의 산 종교로 갈 수 있는 묘방이 교화단에 있다. 이러한 소중한 교화단 운영에 대한 연구와 시행은 계속해서 필요하리라 본다. 

또한 우리는 하루를 아침 수양시간, 낮 일과시간, 저녁 참회 반성 시간으로 나눠놓았다. 이렇게 하루 일과를 세 가지 표준으로 나눠 공부하도록 했다. 수양시간과 참회, 그리고 일과 속에서의 정진 등 때에 맞게 공부표준을 뒀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생활에서 수행길을 잡아가는 방법이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영육쌍전의 공부법이 될 것이다.

[2019년 8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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