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박중훈 교무] 전무출신으로 출가해 20여 년이 되어갈 즈음 법호를 받게 됐다. 그 후 어느 때부터인가 단상에 서면 설교가 아닌 설법을 한다고 소개됐다. 내가 받아들이는 설교와 설법의 어감 차이는 심리적으로 매우 크게 다가왔다. 30대와 40대에는 교단에서 주어진 책무에 정성을 다했을 뿐이다. 이때만 해도 법을 설하는 주체가 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미처 깊이 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었다. 법설은 그저 스승님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사이엔가 내가 그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보통 대다수의 전무출신은 때를 따라 공부하고 준비했을 것이지만 나와 같은 이가 더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하여 법위사정 규정을 살펴보게 되었다.

교도법위사정규정은 원기50년 10월25일에 제정되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54년 동안 7차에 걸친 개정이 있었다. 개정의 흐름을 대략 살펴볼 때 네 차례 정도 두드러진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사정기간의 변화로, 초기 6년마다 법위를 사정했으나 그 기간에 있어서는 최근 3년을 더욱 참조한다는 기준이 생겨났고, 이후 2차 개정(원기68.07.01)시부터 3년마다 사정하는 것으로 정착됐다. 

둘째는 사정대상의 변화다. 제정 당시에는 '법위사정의 대상은 전 교도로 하되 다음 각 항에 해당되는 이는 생전 사정을 보류한다. 1)현직 및 전직 수위단원 2)정식 법강항마위 이상된 분 3)수위단회에서 보류하기로 지명한 분'이라는 조항이 있었으나 1차 개정(원기64.11.16)시에 '법위사정 대상은 전교도로 하되 수위단회에서 보류키로 한 이는 제외한다.'로 변경됐다. 

셋째는 사정위원회의 역할분담으로, 3차 개정(원기80.12.31)시에 규정이 전면개정 되면서 교구법위사정위원회의 역할을 명료하게 규정했다. 또한 사정절차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교구사정의 영역이 확대됐다. 넷째는 훈련조항의 신설로, 4차 개정(원기86.10.05)시에 기존의 제7조 '사정기관'이라 하여 2조항이 있었는데, 제7조 2 '훈련' 조항이 신설되면서 '법위의 향상을 위하여 훈련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법위사정에 반영한다'는 내용이 함께 포함되게 된다.

교단의 법위사정은 위의 네 번째 '훈련'조항의 신설로 인해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이에 교도들에게는 법위사정과 훈련이라는 두 가지가 크게 각인됐다. 특히 훈련의 결과를 법위사정에 반영한다는 조항은 '승급을 할수 있느냐, 없느냐' 여부를 좌우하는 절대조항으로 작용했다. 왜냐하면 몇가지 승급기준 중 법랍과 훈련이수만 정량평가이고 나머지는 정성평가이기 때문이다. 법랍은 조절할수 없는 것이니 결국 훈련이수 여부가 곧 승급의 절대조건이 된 것이다. 그럼 우리는 지금 교도법위단계별훈련을 실시해 그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을까?

교화훈련부가 제시한 '교도법위단계별훈련(안)(원기87.7.30)'에서 단계별훈련의 의의중 일부를 그대로 옮겨본다. "'훈련'은 '교화단 조직'과 함께 원불교 교화의 정체성으로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법위사정을 통해 끊임없는 공부 분위기를 진작시키고 있다. 그러나, 공부인의 정도에 따라 단계별, 체계적으로 시행돼야 할 법위단계별훈련은 교단적 차원에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적절한 프로그램 개발, 훈련 프로그램 운영의 미숙 등 현실적 한계가 상당한 이유가 될 것이고, 또한 그 당위성은 인정하면서 교단 정책으로 시행하지 않은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더욱이 교도들의 법위를 향상 시키려는 교단의 의지가 매 3년마다 법위사정 실시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 결과에 대해 교단 구성원들의 생각은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

단계별 훈련은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을 하나로 해결하여 전 교도가 참여하게 함으로써 신앙·수행 분위기를 진작하고 '훈련'을 원불교 교화정체성의 핵심모델로서 사실적으로 자리매김 시키자는데 의의가 있다."

법위단계별훈련 실시해온지 20여년이 되어가는 지금, 과연 훈련으로 원불교 교화의 정체성이 얼마나 확립되었을까? 혹 훈련이 법위사정을 위한 통과의례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을까? 등등에 대하여 사실에 입각하여 검토하고 보완되어야 할 때이다. 이와 아울러 전무출신들에 대한 법위단계별훈련이 어떤 형태로 실시되고 있는지도 고려해야 할 하나의 과제이다. 매년 훈련을 이수하지만 각자가 자신의 법위를 인지하고 법위표준으로 공부방향을 잡아 나아가고 있는지, 이 또한 각자의 공부이니 개인에게 맡겨두어야 하는 것인지 물음을 던져 본다. 

누구나 때가 되면 법설의 단상에 올라서야 하기 때문이다.

/정읍교당

[2019년 9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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