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본성에 대한 이야기에서 두 명제를 들지 않을 수 없으니 하나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요, 다른 하나는 〈순자〉의 '성악설(性惡說)'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공자는 "본성은 서로 가깝지만, 습관은 서로 먼 것이라(性相近也 習相遠也)"라 했다. 대개 본래 성품은 선과 악이 나뉘지 않았음으로 선하다고 할 수 없고 또한 악하다고 할 수도 없는 선악을 가히 분할(分割) 할 수가 없다. 따라서 정태(靜態)의 입장으로는 성품이랄 것도 없지만 동태(動態)에 있어서는 성품이 선한 것이냐 아니면 악한 것이냐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하다는 것은 이치를 따른다는 것이요 악하다는 것은 이치에 위배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맹자의 성선론은 인성에 대하여 주로 우수한 점을 말한 것으로 우주본원인 이치에 위배됨이 없다는 것이요, 반면 순자의 성악론은 인성에 대하여 주로 결점을 말한 것으로 우주본원인 이치에 위배됨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맹자〉 '등문공상'에 "맹자는 성의 선함을 말하되 반드시 요순을 지칭하니라(孟子道性善 言必稱堯舜)"했고, 또한 '고자'에 "인성의 선함은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과 같나니 사람은 선하지 아니함이 없으며, 물은 아래로 내려가지 아니함이 없는 것이라(人之性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有不善 水無有不下)"고 했다.

〈순자〉 '성악'에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그것이 선한 것은 인위적인 것이라, 지금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로움을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하는 것이 없어지고, 나면서부터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잔적이 생기고 충과 신이 없어지며, 나면서 이목의 욕망을 갖고 있어서 음성(淫聲)과 여색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따르기 때문에 음란이 일어나고 예의와 문리가 없어지니라. … 이것으로써 살펴본다면 사람의 본성이 악한 것은 분명하며, 그것이 선하게 되는 것은 인위적인 것이라(人之性惡 其善者僞也.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 故爭奪生而辭讓亡焉. 生而有疾惡焉 順是 故殘賊生而忠信亡焉. 生而有耳目之欲 有好聲色焉 順是 故淫亂生而禮義文理亡焉.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 明矣. 其善者僞也)"고 했다.

이에 반해 원불교에서는 정하면 무선무악(無善無惡)하고 동하면 능선능악(能善能惡)하다는 매우 탄력성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본다면 성선설적인 입장이다. 즉 일원진리 자체가 일체중생의 본성이라해서 누구나 불성을 지녔기 때문에 선악을 초월한 지선(至善)을 갈무리하였으니 곧 천명(일원진리)을 품부받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송(頌)하기를
본성명징물(本性明澄物)  본래 성품 밝고 맑은 물이니
고무선악분(故無善惡分)  그러므로 선악 나뉨 없다네
업연진체멸(業緣眞體滅)  업연이 참 바탕에 소멸하면
지혜자연흔(智慧自然昕)  지혜가 자연히 밝아지리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19년 10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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