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경열 교무] 정산종사 말씀하시기를 “세상 사람들은 오늘을 맞이하여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좋은날이라 하나 길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에 탐진치가 사라지고 청정하고 밝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날이 좋은 날이요, 마음에 독소를 지니고 남에게 폐를 끼치고 손해를 입히는 날이 흉일이다”라고『한울안 한이치에』마음공부 2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도님들 늘 좋은 날이 되길 염원하며 정산종사님 말씀에 근거하여 ‘좋은 날이 되려면?’ 이라는 주제로 함께 하겠습니다. 교도님들! 오늘이 좋은 날입니까? 아니면 평범한 날입니까? 아니면 나쁜 날입니까? 과거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치던 날이 갑오년 갑오월 갑오일로서 가장 좋은 날이라고 무왕의 신하가 말한 것을 전해 듣고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 날이 무왕에게는 길일이나 주왕에게는 흉일이다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날이지만 각자의 마음에 따라 좋은 날도 되고 나쁜 날도 되고 평범한 날도 될 것입니다. 

어느 날 한 학생과 산책을 하면서 “오늘 좋은 날? 아니면 나쁜 날”이라고 물었더니 “구름이 거치는 중입니다”라고 표현을 해서 “그렇구나. 나쁜 날이 점점 좋은 날로 변하고 있는 중이군”하면서 웃었던 일이 있습니다. 오늘 이 날도 각자의 마음여하에 따라 구름이 거치는 사람도 있겠고, 먹구름이 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좋은 날과 나쁜 날은 날에 있지 않고 우리들 마음 따라 달라짐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마음여하에 따라 좋은 날도 되고 나쁜 날도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마음을 지녀야 좋은 날이 될 수 있을까요? 원기105년 올해 신년법문이 “신성으로 공부합시다”입니다. 대종사님께서 5만년 대운을 바라보시고 이 법을 내놓으셨고, 올해는 종법사님께서 “신성으로 공부하자”라고 방향을 잡아주셨으니 이 길 따라 걷다보면 모두가 지혜롭고 행복하고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믿어봅니다. 그래서 교도님들도 스승님들께서 내 놓으신 교법을 신성으로 공부하고 실천하면 모두가 부처되고 좋은 날을 맞이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이 되기 위해 신성으로 공부해 봅시다.
 

마음의 뿌리에는 
분별성과 주착심이
자리하고 그 핵심은
탐심·진심·치심이다

좋은 날이 되려면 삼독심이 사라져야 
삼독심이란 마음의 세 가지 독소를 말합니다. 탐심과 진심과 치심. 탐심이란 무엇이든지 상도를 벗어나서 과히 취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식욕·색욕· 재욕·명예욕·인연욕·수면욕·안일욕 등을 말하지요. 진심이란 감정이 지나치게 거슬려 나오는 마음으로 마음에 못마땅한 일이나 역경을 당할 때에 신경질이나 분한 마음이 일어나는 마음을 말합니다. 치심이란 상과 관념과 관습에 가려서 나오는 마음으로 어리석은 마음을 말합니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남녀상·선배상·교무상 등이 상에 가리게 되면 어리석은 마음들이 일어나지요.

제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마음이 불편하거나 불안하거나 화가 나거나 어리석어 질 때 그 마음과 깊게 만나보면 그 마음 뿌리에는 분별성과 주착심이 자리를 하고 있는데 그 핵심이 바로 탐심이요 진심이요 치심임을 확인합니다. 아하! 내가 불편했던 이유는 상대가 원인이 아니라 내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탐심이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내 생각대로 살고 싶은데 누군가 간섭할 때 거부하고 싶은 이유는 내 안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진심이 원인이 되고, 조금 아는 것으로 상이 생겨서 어리석어지는 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아하! 그래서 탐심·진심·치심이 공부에 큰 장애가 되는 깊은 주착심이기에 법마상전급의 십계문 중 8·9·10조에 탐심을 내지 말며 진심을 내지 말며 치심을 내지 말라고 하셨고, 이 마음을 세 가지 독소라 해 삼독심이라 함을 깨닫게 됐지요. 각자의 마음에 세 가지 독소가 있는지요? 없는지요? 독소의 기운은 검고 탁한 기운이며, 붉고 사나운 기운이며, 아래로 가라앉고 흩어지는 미한 기운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기운은 어떻습니까? 희고 맑은 기운인가요? 아니면 검고 탁하고 붉고 사나운 독이 든 기운인가요? 아마 교도님들은 희고 맑은 기운이 많이 있겠죠? 
 

잠시 일어나 어두워진 것 뿐
일어남을 탓하지 말고
삼독심을 통해 자성의
정·혜·계를 세우는 공부로

삼독심이 사라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가 40대 초반 영산선학대학교에서 근무할 당시, 영산성지 부근에 핵폐기장 건으로 영광지역에 근무하는 출가교무들 전체가 일주일 씩 군청 앞에서 단식기도를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일주일 단식기도를 하면서 느꼈던 감상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간식은 별로 먹지 않고 세끼 밥을 잘 챙겨먹습니다. 그래서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배꼽시계가 밥 먹을 때를 알려주고, 몇 끼니만 먹지 않으면 어지러웠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단식기도를 하려고 할 때, 미리 10일 전부터 제 몸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내가 공적인 일로 일주일간 단식기도를 하게 되었으니 몸아 네가 잘 알아서 조절해야 한다” 라며 몸에 미리 이야기를 간곡히 했습니다. 그러면서 일주일간 저의 몸 상태를 자세히 관찰해 봤지요. 7일 단식기도하던 4일째 되던 날, 욕심의 뿌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4일간 식욕을 멈추니 색욕·명예욕·인연욕 들이 저절로 비워지고 놓아지는 느낌을 얻었습니다. ‘아! 욕심의 뿌리는 하나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지요. 그러면서 생각되어지는 것이 그럼 하나로 연결된 이 욕심의 뿌리는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교도님들! 이 욕심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연마를 계속하다보니 처음에는 나(아상)라는 것이 욕심의 뿌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연마를 하다 보니 나라는 것도 원래 없는데 따로이 그 욕심의 뿌리가 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욕심도 원래 알고 보면 뿌리가 없는 것이기에 다만 텅 빈 그 자리에 그치면 되겠구나 하는 감상이 들었습니다.

삼독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치심 때문에 어리석어서 탐심이 일어나고, 어리석어서 자기 마음대로 욕심을 부리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진심이 일어나지요. 결국 탐심·진심·치심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탐심의 뿌리나 진심의 뿌리나 치심의 뿌리는 무엇일까요? 이 삼독심의 뿌리도 나라는 것으로 인해 일어나지만 결국 이 나도 원래 청정한 것이고 조건과 환경 따라 변화할 뿐이라는 사실. 그러기에 그 경계를 따라 있어지는 원리를 알아차리고, 원래 없는 청정함을 회복함이 근본 해결책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계 속에서 삼독심이 일어날 때마다 알아차리고 공부하며, 알아차리고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은 청정해지고 밝아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여 좋은 날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은 원래 청정하고 밝고 감사한 마음인데 잠시 조건 따라 경계 따라 탁해지고 사나워지고 어두워졌던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삼독심 일어남을 탓 하지 말고 오직 삶 속에서 삼독심이 일어날 때마다 삼독심을 경험하고 수용하고 사랑하는 공부를 할 뿐이지요. 경계인 줄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공부하고, 자성의 정혜계를 세우는 공부, 감사생활하는 공부를 신성으로 하면 되지요. 

교도님들! 지금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합니까? 아니면 탐심 ·진심·치심이 일어납니까? 탐심·진심 ·치심이 일어난다고 해서 두려워 할 것은 없습니다. 공부할 때가 돌아왔음을 알아차리고, 삼학공부 사은공부를 신성으로 하다보면 어느새 청정하고 밝고 감사한 마음으로 변화되어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경계마다 삼독심과 깊게 만나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해 원래 우리 마음에 충만해 있는 청정하고 밝고 감사한 마음이 활짝 피어나서 매일 매일 좋은 날 되길 염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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