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인생을 살다보면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큰 일로 커지는 일들을 종종 본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은 이처럼 작은 일을 사소하게 생각해 방심했다가 큰 낭패를 보거나 또는 작은 병을 무시했다가 큰 병이 되는 경우에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속담이다.

정산종사법어 근실편 13장에서는 ‘마음병’에 대해 “부지중 습관상으로 외부에 나타나는 약간의 허물들은 위독한 증세는 아니지마는, 만일 내심을 속이고, 그 중에도 양심상 가책되는 행동을 하되 조금도 뉘우침이 없어서 양심이 마비되면 그 인격은 무너지고 마나니라”라고 했다. 

이 법문을 보면 바로 대종경 수행품 56장 내용이 떠오른다. 우리가 선원에 입선하는 것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는 것과 같다는 대종사의 법문으로 육신의 병은 아무리 중하다 할지라도 그 고통이 일생에 그칠 것이나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영원한 장래에 죄고의 종자가 되며 마음의 자유를 잃어 외경의 유혹에 끌리다가 필경은 자기 스스로 죽을 땅에 들기도 하고, 스스로 천대를 불러들이기도 하며, 스스로 고통을 만들기도 해 죄에서 죄로 고에서 고로 빠져 들어가 다시 회복할 기약이 없게 된다고 했다.

이 두 법문에서는 ‘마음병’이 우리를 죄고에 빠지게 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을 통해 ‘마음의 자유를 잃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고 했다. 곧 사람은 누구나 일시적 실수로 도덕적인 허물을 가질 수는 있으나, 그것이 반복되고 습관이 되어 깊어지면 마음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되고 결국은 스스로 양심을 속이면서도 뉘우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자신의 삶과 영생을 망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마음병’이 깊어지는 것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점점 우리의 도덕성을 잠식해 들어간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수행하는 수도자의 모습을 ‘우행호시(牛行虎視)’라고 표현한다. 항상 행동을 소처럼 진중하게 하면서도 정신은 호랑이처럼 깨어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보조국사 지눌도 일상을 ‘우행호시’로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우행호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원불교적 표현이 ‘주의’와 ‘조행’이다. 주의가 일상 속에서 개인의 수행적 삶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조행은 사람들과 사이에서 늘 사람다운 행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항상 자신의 마음을 챙기고 살피는 사람은 우리 마음에 비록 작은 도덕적 허물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살피고 치료해 마음병으로 커지지 않도록 할 것이니 그것이 바로 일상을 통한 ‘마음공부’요, 그러한 챙기는 마음으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불공’이다. 마음병을 키우는 삶과, 마음공부와 불공으로 일상을 채워가는 불보살의 삶. 오늘 하루 우리는 어떤 가랑비로 마음과 삶을 적시고 살았을까?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3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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