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정전에 ‘분이라 함은 용장한 전진심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할 때에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니라’라고 했다. 

이 분(忿)자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분자는 통상적으로 ‘성낼 분’자 이다. 즉 ‘성내다. 화내다. 분하다. 원망하다. 원한을 품다. 분한 마음’ 또는 ‘왕성하다. 가득차다. 차다. 차서 넘치다’는 등의 뜻을 가진 글자이다. 이에 ‘발분(發憤)하다. 힘쓰다. 분발하다(奮發:마음과 힘을 다하여 떨쳐 일어나다)’는 등의 뜻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뜻은 될 수 없다. 따라서 이와 비슷한 글자 셋을 비교해 보면 더욱 선명하게 알 수 있다.

忿:성낼 분. 떨칠 분. 힘쓸 분. 憤:분할 분. 결낼 분. 怒:성낼 노. 세찰 노. 위세 노.

여기에서 볼 때 ‘분(忿)’자는 어디까지나 ‘성질을 부린다’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뜻을 옛 문헌에서 고증을 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설문에 “분은 성내다(忿也)” ② 광아(廣雅)에 “분은 성내다(忿 怒也)” ③ 초사·회사(楚辭·懷沙)에 “어긋남을 꾸짖고 분함을 바꿈이여!(懲違改忿兮!)” ④ 옥편에 “분은 한스럽다. 성내다(忿 恨也 怒也)”

그런데 이 ‘분’을 진행4조에서 ‘분’을 ‘용장한 전진심’이라 했고, 또 ‘권면(勸勉)하고 촉진(促進)하는 원동력(原動力)’이라 했음을 볼 때 분명 ‘분발한다. 발분한다’라는 의미가 충분히 내포 됐다. 중문대사전(中文大辭典)의 ‘분(憤)’조에 보면 ‘분(忿)’이라는 뜻은 없다. 반면에 ‘분(忿)’조에 보면 “통작분 (通作憤)”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즉 ‘憤과 통한다’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권면하고 촉진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분발해야 할 이유를 문헌에서 보면 논어술이(述而)에 “섭공이 공자를 자로에게 물었다.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다. 공자가 말씀하기를 ‘너는 왜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그 사람의 됨됨이는 (어떤 일에 열중하다보면) 밥먹는 것을 잊어버리고 즐거워서 근심을 잊으며 늙음이 장차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한다고 이를지라’

또한 “성간이 제나라 경공에게 ‘저(성인)도 장부며 나도 장부이니 내가 어찌 저(성인)를 두려워 하리요’

또한 “안연이 ‘순임금은 어떤 사람이며, 나는 어떤 사람이냐. 하는 사람은 또한 이와 같으리라’

송(頌)하기를
수도지인자(修道之人者)  도를 닦아가는 사람으로
약무발분심(若無發忿心)  만일 발분의 마음이 없으면
난성진불조(難成眞佛祖)  참된 부처조사 이루기 어렵나니
망식사성림(忘食瀉誠臨)  밥도 잊고 정성을 쏟아 임할지라.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4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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