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산 이성택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유원경 기자] 법위등급은 소태산 대종사가 각 법위에 맞는 단계별 공부의 표준을 세워, 등급에 맞게 훈련을 실행할 수 있도록 제시한 법위표준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교리문답에서는 법위등급의 의미와 3급 3위의 표준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앙남자원로수양원 교산 이성택 원로교무와 문답했으며, 2회에 걸쳐 연재된다.

『정전』에 법위등급을 밝혀준 의미는
『정전』은 총 세편으로 구성됐다. 총서편은 서론이자 총론, 교의편은 총론을 구체화 시킨 본론이다. 수행편은 이 본론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실천방법론인 것이다. 그 중에서 법위등급은 마지막에 기술돼 있는데, 총론과 본론, 실천방법론 세 가지를 다 아울러 공부하고 그 결과를 구체화해 보통급·특신급·법마상전급의 3급과 법강항마위·출가위·대각여래위의 3위로 드러냈다. 수행인들의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법위등급은 아주 세밀한 목표이다. 목표가 필요한 이유는 동기유발이 있기 때문이다. 법위등급은 공부인들에게 정확한 단계별 목표를 제시해 주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파괴와 초월이 없어야 한다. 파괴와 초월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보통급·특신급·법마상전급대로 수준에 맞는 훈련이 이뤄져 보통급이 상전급의 과정으로 넘어서거나(초월), 상전급이 예전에 받았던 보통급의 훈련을 다시 이수하는 등(파괴)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각 훈련원에서의 훈련도 이러한 법위에 맞는 실질적인 훈련이 이뤄져야만 할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정전』을 완성하기까지 28년이 걸렸다. 한 번에 저술한 것이 아니고 차근차근 순서별로 시험해 보고 또 수정하면서 28년 동안 정성을 들여 만들어 낸 경전이다. 그런 『정전』을 우리가 받아 지키고 있는 것이다.
 

특신급에서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는다’라고 한 뜻은 무엇이며, 이러한 생활은 출가자의 생활이 아닌가. 재가와 출가의 특신에 차이가 있는가
보통급은 불지출발이라 했다. 출발선이라는 것이다. 특신급은 입지, 즉 마음을 세우는 단계이다. ‘모든 사상과 생각이 다른 곳에 흐르지 않는다’라는 뜻은 이 마음을 세우는 단계에서 재가와 출가의 관계없이 이 교법을 가지고 내 인생을 살아가야겠다는 입지가 섰을 때, 그 단계를 특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러한 입지의 공부인이 정신수양을 한다면, 염불과 좌선의 힘이 보통사람과 다르다. 입지단계 공부인의 염불과 좌선은 보통사람들의 수양력과는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수양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 딱 서야한다. 사업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안 흐르게 된다. 또한 우리의 교리와 법규를 대강 이해한다고 한 것은 특신급에서의 사리연구 표준을 대체 강령을 이해하는 정도로 밝혀준 것이고, 특신급 십계를 표준해 작업취사의 공부를 세워줬다. 특신급은 입지의 단계에서 삼학공부를 밝혀준 것이다.


과거 선지식들은 견성을 표준해 공부길을 언급했는데, 왜 보통급의 공부 표준을 신심, 특신으로 잡아줬는가
만약 특신급 단계에 견성이란 공부를 이르게 되면 이것이 초월이 되는 것이다. 견성은 항마위로 승급할 때 들어가는 조목으로, 법마상전급이 항마위에 올라갈 때 견성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대소유무의 이치에 걸림이 없는 것, 그 자리가 견성인 것이다. 그런데 특신급에서 견성을 이야기 한다면 공부가 초월이 되어 버리고 목표가 생기지 않는다.

법위등급 전체가 삼학으로 돼 있는데, 보통급은 보통급의 삼학, 특신급은 특신급의 삼학, 법마상전급대로의 삼학, 항마위·출가위·여래위도 그 단계의 삼학이 있는 것이다. 그 삼학공부만 잘 풀어놓으면 과정은 나온다. 

특신급은 특신급의 삼학이 있다. 예를들어 특신급은 ‘보통급 10계를 잘 지키고’라는 조목이 있다. 이는 취사공부의 표준이고 보통급은 신·구·의 삼업 중 몸으로 짓는 죄과에 대한 계문이 중심이다. 삼십계문 자체가 단계별화 돼 있는 것이다. 파괴와 초월이 없는 세밀한 공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특신급은 특신급에 해당되는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가 있다.


좌선의 득력을 얻어 부유난상(浮游亂想)없이 입정에 드는 이는 수양력이 깊은 만큼  항마위에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인가? 항마와 수양은 어떤 연관이 있나
유정물은 개령을 갖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나는 것이다. 식물은 대령만 있고 개령이 없다. 그래서 부유난상이 없고, 사시순환에 따라 그냥 변화가 된다. 그렇지만 개령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기의 의식작용을 할 수 있는 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령과 대령이 어떻게 다른가, 개령이 쉬어버리면 대령에 합하고, 대령이 현실로 나타나면 개령이 드러난다. 그래서 둘이 아니다. 개령을 갖고 있는 모든 유정물은 부유난상이 일어나게 돼 있다.

우리는 모두 개령을 갖고 있으며, 그 자체가 이미 부유난상이다. 이것이 일어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 아니겠나. 그래서 부유난상을 정신수양으로 잠재우는 것이다. 부유난상이란 정심과 사심이 서로 교전하는 것이다. 법마상전이라는 것은 심신교전(心身交戰)인데, 상전급의 삼학은 부유난상과 정념과의 교전으로, 이것이 상전급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상전급에서는 반드시 부유난상을 통해서 항복받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공부 역시 삼학으로 해야 한다. 또한 법강항마위를 설명하자면 작업취사 표준으로 법이 백전백승한다고 했고, 사리연구 표준으로 우리 경전의 뜻을 일일이 해석하고 대소유무에 걸림이 없다고 했으며, 정신수양의 표준으로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법강항마위의 삼학표준이 되는 것이다.


성리에 바탕한 수행이란 어떤 공부인가
성리(性理)라는 것은 마음바탕인데, 성(性) 자리에서 한 단계 나오는 것이 심(心)이다. 우리는 이 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을 가지고 성리를 비춰 공부하라고 일렀다. 이 심을 가지고 공부하면 그것은 상전급의 단계다. 성리자리가 뭐냐, 그것은 공자리다. 비었다. 마음이 나타나는 근본자리에 돌아가서 거기에다 대조해서 공부를 할 때에, 우리가 쉽게 항마를 할 수가 있다. 아까 부유난상을 말했지만, 그 부유난상들이 성리자리에서는 없는 것이다. 그 본래 없는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성리공부다.

진공묘유의 수행문은 진공의 수행과 묘유의 수행을 아울러 하는 수행이다. 진공의 수행만 하는 것은 불교의 공부다.『대종경』에 불교는 잘못하면 망공(妄空)에 떨어지기 쉽고, 유교는 잘못하면 현실에 집착하기 쉬우며, 도교는 잘못하면 자유방종 할 수 있다고 말씀했다. 

불교는 대자리에 바탕했고, 유교는 소자리에, 도교는 유무자리에 바탕한 종교다. 우리의 진공묘유의 수행은, 진공의 수행과 묘유의 수행을 함께 아우르는 수행공부를 한다. 진리의 전체 자리를 수행하는 것이다.

[2020년 5월 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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