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길튼 교무
방길튼 교무

[원불교신문=방길튼 교무] 동포은의 대요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道)이다. 동포는 한 가지 동(同), 태 포(胞)로 한 포태의 존재를 총칭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비롯한 금수초목의 생명가진 모든 존재는 한 동포로서 천만물질까지 동포인 것이다.

신령하게 깨어있는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 자리에서 보면 동포가 동포를 기르고 있는 것이다. 즉 동포에 의해 동포들이 살고 있는 관계로, 이러한 사실이 동포에게서 입은 동포 피은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로, 이같이 큰 은혜가 없다는 것이다. 

청정 일원상으로 보아야 서로 의지가 되고 바탕이 되는 자리이타의 동포은이 드러나는 것이다. 서로 의지가 되고 바탕이 되는 자리이타의 도가 드러나려면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에 기반해야 하며, 텅 비어 고요한 일원상 자리가 드러나지 못한다면 서로 의지가 되고 바탕이 되는 자리이타의 도를 감지할 수 없는 것이다. 자리이타의 도인 일원상을 놓치면 동포가 동포를 기르는 동포 피은의 관점이 아니라 동포가 동포를 해롭게 하는 동포 배은의 시각에 갇히고 마는 것이다. 

자타가 둘이 아닌 자리이타의 도는 일원상의 드러남으로, 이 자리이타의 도를 실행하는 것이 동포 보은이다. 이처럼 자리이타는 쌍방이 이로운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으로, 자리이타의 도를 체받아 실행하는 것이 동포 보은의 핵심이다.

동포 보은의 ‘공정한 자리’는 자타가 둘이 아닌 일원상의 드러남으로, 공정한 자리에서 자리이타의 도를 행하는 것이 동포 보은의 기점이다. 동포 보은은 희생적 이타행이 목적이 아니라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가 궁극이다. 자리이타는 자기이익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이 상대의 이익과 교차되고 교류되도록 하는 관점이다. 자기를 타인의 영역에 던져버리는 헌신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자타의 관계에서 상대를 인정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존재 근거가 되고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리이타의 도는 공정한 일원상 자리에서 드러나는 동포성(同胞性)이다. 즉 자타가 둘이 아닌 공정한 자리에서 드러나는 자리이타의 도를 동포성이라 하며, 자리이타의 도는 공정한 상호 관계요 거래이며 공정한 기회균등으로 쌍방이 이로운 길이다. 시작뿐만 아니라 과정도 그리고 분배의 결과도 자리이타가 되도록 공정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타자의 피땀이 더 많이 공급되었기에, 만일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성공되었다 여기고 이익을 독점하려고 한다면 동포 배은자인 것이다. 성공할수록 더욱 동포에 보은하여 자리이타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동포의 은혜를 입은 피은자이기에 서로서로 동포 보은이 요청되는 관계이다. 

결국 자리이타의 도가 구현된 동포 보은의 세상은 개교의 동기의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동포의 생명권, 인권, 물권 등이 다 존중되는 세계은덕의 세상이다.

 /나주교당

[2020년 6월 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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