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덕 교무
이윤덕 교무

[원불교신문=이윤덕 교무] 원불교의 출현은 유구한 인류종교사에서 그야말로 점하나를 찍은 것이지만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은 위대한 정신의 여정이 시작됐음을 알린 경사라 할 수 있다. 원불교 개교의 동기에 나오는 담대한 목적 ‘광대무량한 낙원’은 인류평화를 부정하고 인도될 수 없는 곳이다.

필자는 독일에서 교화를 하면서 1차, 2차 세계대전을 야기했던 패전국이지만 자신들의 역사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뼈저린 각오를 되새기며 평화의 역사를 써 나가는 것에 큰 감동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강대국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모색하기보다는 마치 어느 한 나라를 죽여야만 내가 산다는 제국주의 심보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어 우려가 깊다.

인류 전쟁역사에서 내 나라만이 정의이고 상대는 악이라 상정할 때 그 고통이 크게 다가왔으며 다른 나라를 희생시켜 자기의 이익을 쫓던 수많은 제국주의들이 그 욕심의 과보로 인해 사멸해 간 것도 사실이다.

세계는 이미 군사강국이라는 몇 나라들은 지구를 여러 번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가공할 핵무기들을 가지고 있다. 이제 세계전쟁이 또 다시 일어난다면 모두가 함께 죽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평화 정신의 힘을 키우는 종교의 힘은 막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과 미국의 이익과 방어를 위해 원불교 평화의 성지 성주에 배치된 사드 반대 투쟁은 평화운동의 모범사례라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인류평화 정신의 힘이 그 세력을 넓혀왔기에 세계전쟁이 일어난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은자의 불장난이 설 자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반드시 평화가 그 바탕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평화를 지키고 실현하려면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군사적일 필요는 없다. 원불교가 인도할 광대무량한 낙원은 상대를 적대시하기보다는 평화의 울타리에서 함께하는 지혜를 발휘하는 실천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냉전의 시대가 가고 세계평화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들을 했지만 그 길로 나아가지 못한 중대한 이유 중 하나가 군수산업을 일반 생활 산업으로 변화시키지도, 제어하지 못한 일이다. 군수 자본과 군수 산업은 전쟁이 없으면 평화가 아니라, 자신들의 실업이요 돈벌이가 안 되기 때문에 반평화적인 일들을 기획하고 실천에 옮기기 때문에 신냉전의 시대가 도래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다시 무기체계 개선이란 이름으로 경쟁적으로 군비들을 확장하고 있으니 세계평화 애호가들의 시름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 종교의 역할이 중요하며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지나온 인류전쟁사에서 종교는 평화를 실천하기도 하였지만 때때로 자기 종교의 확장을 위해 신의 이름으로 성전이라 이름 지은 전쟁을 해왔고 지금도 그것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

지금 종교가 할 가장 시급한 것은 종교간 평화이다. 그것은 각 종교내부에서부터 이웃종교간 미워하는 마음을 서로를 인정하는 가르침에서부터 출발해야만 한다. 그래서 원불교의 삼동윤리사상은 평화의 실천적 덕목이라 할 수 있다. 천신만고의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원불교는 평화를 지키고 전하며 실천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세계인 누구라도 인류평화와 더 나은 미래를 함께하고 싶다면 원불교와 당당하게 함께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도록 재가와 출가 공부인들의 발걸음은 당당해야만 한다.

공부인들의 이 삶이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레겐스부르크교당

[2020년 8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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