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글자와 단어를 풀어보면 ① 無:없을 무. 없다. 아니다(=非). 아니하다(=不). 말다, 금지하다. ② 我:나 아. 나. 우리. 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나의. 아집을 부리다. ③ 奉:받들 봉. 받들다. 바치다. 섬기다. 힘쓰다. ④ 公:공평할 공. 공변될 공. 공평하다. 공변되다(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다). 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 ⑤ 無我:‘나’라는 생각을 갖지 않음. 일체의 존재는 다 무상한 것이므로 ‘나’라는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 인무아(人無我), 법무아(法無我)의 둘로 나눈다. ⑥ 奉公:나라나 사회를 위하여 힘을 바침. 공직에 종사함. 

무아란 무엇일까? 인간을 비롯한 만물에는 고정 불변하는 실체로서의 나가 없다는 뜻으로 범어(梵語)로는 아나트만(Antman), 팔리어로는 아나딴(Anattan)이라 한다. 무아(無我)란 부처님이 깨달은 뒤 최초로 설파한 가르침이다. 이전의 인도사상에서는 상주(常住)하는 유일의 주재자로서 참된 나인 아트만(Atman)을 주장했으나, 부처님은 아트만이 결코 실체적인 나(我)가 아니며, 그러한 나는 없다고 주장을 했다. 다시 말하면 오온(五蘊)이 화합하여 형성된 인간 존재는 참다운 본체인 실아(實我)가 없다는 말이다. 물론 희비를 가르고 증애를 표출하는 아가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무엇이 들어서 운전을 할까? 이렇게 볼 때 오온의 가아(假我)는 없지만 우주진아(宇宙眞我)는 없는 것으로서 있다고 보아야 한다.   

봉공이란 우주지사(宇宙之事)를 실현하는 길이다. 공이란 이장(籬牆)이 없고 계한(界限)이 없는 우주지공(宇宙之公)이기 때문에 그 운행으로 나투어지는 묘유지행(妙有之行)을 체본(體本)하여 실천하자는 것이요 소소한 인세(人世)의 일상 일을 해나가자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우주지아(宇宙之我)를 체득하고 성취한 사람은 일상사가 곧 우주사이요 우주사가 바로 일상사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한다할지라도 봉공의 큰 일을 실현하는 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진리에 대한 각여불각(覺與不覺)을 따지고, 마음에 대한 개여불개(開與不開)를 따지며, 일에 대한 공여불공(公與不公)을 따질지언정 사사(私事)를 버리라, 또는 사행(私行)을 버리라는 등의 소사(小事)나 소행(小行)에 힘을 주어서 강조할 필요는 없다. 

경문인 대지도론(大智度論) 1권에 이르기를 “일체 유위의 법은 무상이요 고이며 무아이니라(일체유위법 무상 고 무아 一切有為法 無常 苦 無我)” 

송(頌)하기를
무아여흔멸(無我余痕滅)  무아란 나라는 흔적이 소멸하고
봉공우사행(奉公宇事行)  봉공은 우주의 일을 행함이어라
세생사업척(世生斯業擲)  세세생생을 이 사업에 던져서 
위불낙원성(爲佛樂園成)  부처가 되고 낙원을 이룰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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