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광익 원로교무
오광익 원로교무

[원불교신문=오광익 원로교무] 우리는 주세성자의 정법을 만나고 회상을 만나 출가하고 혹은 재가를 했다. 그리하여 재가출가를 막론하고 영겁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삼세를 통과했고, 또한 재가가 출가가 되고 출가가 재가 되어 역할을 분담하면서 육도를 승강(昇降)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이러는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몸을 받은 세상마다 큰 스승을 만나고 정법을 만나며 진리를 깨달고 성품을 회복하여 불보살의 대열에 합류했느냐 아니면 일반적인 중생으로 살았느냐의 문제로 남겨져서 짓고 받은 보따리인 업연(業緣)이 마치 형상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듯이 절대로 떨쳐버릴 수 없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 현재의 입장에서 어제를 보고 오늘을 알 수 있고 오늘로 인해 내일을 가늠하듯 현생에 태어나 주세불을 만나 그 법하에 들었고 정법을 신봉해 소홀함이 없으며 신앙과 수행으로 혜복의 길을 다듬어가고 있다는 상황을 본다면 결코 헛된 과거인 전세의 삶은 아니었다고 자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으로 입회(入會)하고 상우(相遇)한 우리가 주세 성자가 짜놓은 정법의 조항에 대하여 왈가왈부를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혹 주세성자로서의 책임을 가졌다거나, 또는 주세성자 이상의 지견을 가졌다거나, 또는 어떠한 진리를 걸리고 막힘없이 크게 깨달았다거나, 또는 구세제인(救世濟人)의 중책을 짊어졌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고 정법의 조문이나 조항에 대해서 발첨(拔添)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 무례하고 무지하며 무모(無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알면 얼마나 알고 깨쳤으면 얼마나 깨쳤기에 함부로 전무후무한 대도정법의 조항에 대하여 가감(加減)이라는 단어를 접합할 수 있겠는가. 안 된다. 일자일구도 첨삭(添削)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각골명심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생각이 전세의 망념을 넘어야 하고, 지금의 행동이 전세의 어리석을 넘어야 하며, 지금의 업이 전세의 지음을 넘어야 하고, 지금의 지혜가 전세의 알음알이를 넘어야 하며, 지금의 마음이 전세의 어둠을 넘어야 하고, 지금의 깨달음이 전세의 미혹을 넘어야 한다.”(한문생략)

이렇게 모두를 넘어서서 정법의 조항을 신수봉행(信受奉行)하고 환희봉대(歡喜奉戴)를 해야 한다.

송(頌)하기를
정법조조현(正法條條顯) 정법은 조항마다 드러나고
일원리이명(一圓理理明) 일원은 이치마다 밝아라
신봉무퇴식(信奉無退息) 믿고 받들어 물러나 쉼 없으면
득도차중성(得度此中成) 제도를 얻음 이 가운데 이뤄지리.

/중앙남자원로수양원

[2020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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