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윤 교무
현지윤 교무

[원불교신문=현지윤 교무] 우리라는 이름으로 소속되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라고 말하고 싶고, 집단의 일원으로 기쁨을 느끼고 싶었을 뿐인 사람들. 불안한 사회 속 그저 강인한 우리에 속하고 싶었던 무수한 보통의 사람들이 있다. 

1960년,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을 지휘했던 악명 높은 아돌프 아이히만이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들은 한나 아렌트는 재판 과정을 취재한다. 이를 바탕으로 1963년에 출판된 책,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아렌트는 피고석의 아이히만이 실제로 저지른 악행에 비해 너무 평범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보기에 그는 피에 굶주린 악귀도, 냉혹한 악당도 아니었다. 그냥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이었다. 아이히만은 특별한 인간, 어떤 이념에 광분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했을 뿐이었다. 어떤 질문에도 아이히만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답한다. 명령은 지키는 것이 도리라고. 비록 그 명령이 수백만 죄 없는 사람의 희생이라도. 

자신이 저지른 일과 자신의 책임을 연결 짓지 못한 채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는 아이히만에게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을 끌어낸다. ‘악’이란 뿔 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며, ‘사랑’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할 계기가 있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오직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일상성에 묻혀, ‘누구나 다 이러는데’,‘나 하나 반대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등의 핑계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그만둔다면, 평범하고 선량한 우리는 언제든 악을 저지를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조금 더 선하게 만들고 싶다면 어떤 이념이나 지도자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무능력, 그것이 바로 악(惡)이라는 것. 그래서 ‘자비,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 공부가 중요하다. 

카렌 암스트롱은 축의 시대에서 종교란 무언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무언가를 믿는 것과 종교적 믿음을 동일시하는 종교적 문맹을 주의하란다. 모든 종교의 교리는 헌신적인 행동을 끌어내기 위한 것이며, 종교의 가장 의미 있는 부분도 ‘다른 이를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이라고. 

대종사, 내가 못 당할 일은 남도 못 당하는 것, 내게 좋은 일은 남도 좋아하니. 내 마음에 섭섭하거든 나는 남에게 그리 말고, 내 마음에 만족하거든 나도 남에게 그리하란다. 이것이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고, 오래오래 공부하면 자타의 간격이 없이 서로 감화를 얻는다고. 그렇다. 예나 지금이나 이 마음이 황금률이다. 

 /휘경여자중학교

[2020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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