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태 교무
류성태 교무

[원불교신문=류성태 교무] 여기에서 말하는 ‘적기(適期)’란 무슨 뜻인가? ‘적당한 시기’라는 뜻으로, 고전에서 그 의미를 모색해 본다면 의미의 심오함을 더해준다. 『주역』 귀매괘(歸妹卦) 육오 효사와 손괘(巽卦) 구오 효사를 보면, ‘마땅히 그 일의 앞뒤 과정을 일정기간 동안 긴밀히 살펴야 함’을 말하는 것으로, 적기란 적절한 시기에 응대할 때 길(吉)하게 된다고 했다. 구폐를 적절할 때 개혁할 경우 길일이 되고, 그 시기를 놓치면 흉일로 변한다는 시중(時中) 원리과도 같다.

시중 즉 타이밍으로서 신·구(新舊)의 시대상황이 달라질 때 개혁할 적기라는 명분을 가져다준다. 『월말통신』 4호(원기13년)의 〈법회록〉을 보면 구시대의 아무리 적합한 법이라도 현대에 와서 맞지 않음을 알지 못하고 “구도덕 관념에 그쳐서 신시대의 새 정신에 순응치 않는다면 그 구도덕이라 하는 것은 날로 부패에 돌아갈 것”이라 했다. 과거를 혁신해야만 하는 초기교단의 개혁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과거 세계의 종교사를 돌이켜 보면, 제반의 종교들은 창립초기에는 생명력이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안주의 폐쇄적 상황에 빠지곤 했다. 전통종교들은 처음 출발할 때와 다르게 세월이 흐르면서 무기력해졌던 것이다. 여기에 부득이 탈출구로서 개혁종교로의 변모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개혁종교의 면모를 찾는 면에서 이웃종교들의 세기적 변천사가 주목된다. 불타 사후 100년이 지나면서 초기불교는 안빈과 청정 가치를 추구하는 출세간 성향에 머물렀는데, 뒤이어 700인이 회의를 열어 경전 대결집을 하고 화폐를 긍정하고 보시를 인정함으로써 민중불교로 개혁하는 계기를 맞이했다. 한국 개신교 100년(1966년)의 역사를 보면,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처음 선교를 시작한 후, 인권과 민주화 등 도시선교 및 세계교회운동에 앞장섬으로써 교세확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원불교는 100년 성업행사를 전후해 교단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교화단 활성화는 쉽지 않았고, 교서결집사업이 미뤄지고 있으며, 현장교화 역시 정체의 늪에 빠져 있다. 

교단 2세기에 접어들어 개혁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아쉬움에 있던 차, 근래 개혁의 긍정적 신호로서 정녀제도의 자유선택, 교무호칭의 통일 등 신선한 개혁의 닻을 올리고 있다. 『조선불교혁신론』에 버금가는 정녀제도의 ‘대전환’이라는 말이 회자되기도 한다.
이제 시작이다. 시대에 맞는 인사제도 및 교헌의 개정, 교서의 재결집 운동, 교역자 의식개혁 등이 성과를 이루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교단창립 2세기에 진입하여 새 시대의 생활불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교단의 새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개혁’을 화두로 삼아서 실천에 옮길 청사진을 제기해야 한다는 뜻이다. 

교단창립 100주년은 개혁의 적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개혁에 미흡하였던 점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단 2세기에 맞는 교화방식의 시스템적 전환은 어려운가? 교서결집 사업을 계속 미룰 것인가? 『원불교 교사』를 60년사에 머무르게 할 것인가? 

장준하가 『지식인과 현실』에서 개혁의 지체현상에 대해 침묵한다는 것은 발전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것이라고 했던 점을 참조할 일이다. 

 /원광대학교

[2020년 8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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