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교무
조경철 교무

[원불교신문=조경철 교무] 최근 SNS에 떠돌아다니는 한 목사의 글이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종교인들의 다양한 행태에 일침을 주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면 죽인다고 칼이 들어올 때 목숨을 걸고 예배드리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예배 모임이 칼이 되어 이웃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 모이지 않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 교단도 정부의 방침에 동참하기로 해서 여러 번의 법회 휴회를 결정해 왔는데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일부 교회의 목회자와 신도들을 지켜보며 나의 신앙에 대해 잠시나마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나는 그들보다 신앙이 약해서 이처럼 쉽게 법회 휴회를 결정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딱 부러진 답을 하기가 어려웠는데, 한 목사의 명쾌한 해석이 잠시나마 가졌던 어리석은 자괴감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줬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배를 강행한다는 그들 또한 신앙의 대상이 있고 교리적 근거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종교(宗敎)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으로 인간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는 것인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일부 종교인들의 그릇된 행태로 인하여 종교 존재 자체, 그 필요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이 시기에 코로나19 이후의 미래를 예상하기조차 힘든 시대를 살아가며 어떤 종교를 신앙해야 하고, 어떤 것이 올바른 신앙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개교의 동기에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이 그 동기니라”고 밝혀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진리적 종교’란 도대체 어떤 종교일까? 먼저, 진리의 사전적 의미는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고, 보편적·불변적으로 알맞은 것’이고, ‘진리적’이란 이런 성질을 지닌 것을 뜻합니다. 이것을 연결해 보면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성질을 가진 종교’가 바로 진리적 종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렇다면 ‘종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정체성에 대하여 어떤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까? 

‘종교’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해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는 ‘종교’란 무엇인가 원하는 것을 이뤄 달라고 비는 행위나 대상으로 인지되어있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은 이미 과학의 발전으로 상당 부분이 밝혀지고 있고 종교나 신앙 역시 시대 변화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 존재의 의미조차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등상불 신앙을 활불을 향한 실지불공으로 ‘확’ 바꿔 놓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법당에 모셔진 일원상을 등상불로 상징화하고 과거의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자문해 봐야 하겠습니다. 시대는 이미 후천의 하늘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선천의 그림자에 가려 말세의 몸부림을 하는 일부 종교인들이 하루빨리 ‘진리적 종교의 신앙’으로 회귀해 인류 모두가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함께 가는 날이 오기를 기도하며, 진리적 종교와 진리적 종교의 신앙의 참 뜻을 새겨 봅니다. 

‘보편적·불변적이며 현실이나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참된 이치의 성질을 띠고 있는 종교를 믿고 받들어 실천하는 것이 진리적 종교의 신앙’입니다. 당신의 종교는 과연 ‘진리적 종교’이며 당신의 신앙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입니까?

/군산교당

[2020년 9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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