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울산교구 명륜교당 장심연 교도

천염주 기도,
수행한 바가 없는 수행
수십 년 사경노트,
헌배하듯 기도하듯

[원불교신문=이은전 기자] 대종사는 ‘처세에는 유한 것이 제일 귀하고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며 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는’ 이는 늘 안락하리라고 했다. 어눌하고 바보같이 행동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이는 하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속에서 펄펄 살아 날뛰는 ‘나’가 없어졌을 때 저절로 도달하게 되는 경지이기 때문이리라. 그때에 이르면 자연히 분주한 가운데도 늘 한가하며 안락하게 될 것이다. 
 

용타원 장심연 교도
용타원 장심연 교도

용타원 장심연(77·容陀圓 張心硏·명륜교당) 교도, 그와 마주앉아 나눈 시간들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여여자연’이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정갈하고 소박한 그의 집에 들어서니 한쪽에 쌓여있는 수십 권의 사경노트와 불단 앞 천염주가 그가 쏟고 있는 수행의 시간들을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오랜 시간의 수행으로 똘똘 다져진 묵직한 수행담은 인터뷰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그에게 하는 질문마다 ‘잘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행이랄 것도 없이 시간 날 때마다 그냥 하고 있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그렇다. 그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살고 있었다. 하루에도 서너 시간씩 기도와 염불, 사경을 수십 년 동안 해오면서도 수행한다는 생각이 없다.

“아침마다 천염주를 돌릴 때나 사경을 하고 있으면 잡념이 싹 사라집니다. 수행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몸이 움직이는 대로 둡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좌선으로 시작해 기도를 마치면 천염주를 든다. 영주, 일원상서원문, 반야심경, 청정주를 차례로 염주 한 알 한 알에 담아나간다. 염주를 돌리는 손길에 불쑥 망념이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그대로 가만히 두면 망념은 망념일 뿐이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교전 사경은 그대로 기도다. 

“한 자 쓰고 3배하고, 한 자 쓰고 3배하는 심정으로 글자를 꾹꾹 눌러 써내려갑니다. 수십 년째 사경하고 있지만 아직도 모르는 말씀이 너무 많아요.”

60매용 사경 노트를 펼치니 어느 페이지를 펴도 첫 페이지와 똑같이 흐트러진 글씨 하나 없다. 그 흔한 볼펜 똥도 없다. 천염주 염불이나 사경이나 똑같다. 오르락내리락 굴곡 없이 잔잔하다. 처음 마음이 끝 마음이다. 

“오래 하다 보니 법문이 몸에 배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전체가 하나로 엮어지는 느낌입니다. 연기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이 머리로만 알다가 살면서 몸으로 확 와닿더라구요.”
지난 번 부산경남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 마이삭으로 거실 유리창틀이 휘어지며 떨어져 나갈 뻔 했을 때 그의 머리에 가장 먼저 든 생각도 나보다는 남이다. 무시무시한 태풍이 온 집안을 휘젓고 있는데도 유리창이 깨져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는 걱정이었다. 큰 경계를 겪어보면 그동안 수행의 결과가 민낯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경계는 은혜일 수밖에 없다. 

10년 전 그가 대장암 수술을 받을 때도 내 아픔은 하나도 문제되지 않고 몸이 성치 않았던 남편 걱정만 했다. 뇌경색을 겪어 회복 중이던 남편을 돌보는 일에 이미 ‘나’는 없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서도 마음에 별로 변화가 없더라구요. 삶이다 죽음이다 그런 분별이 떠오르지는 않았고 그냥 영주를 외우면서 들어갔어요. 영주는 늘 버릇이니까요.”

5~6년 후 남편이 완전히 회복됐을 때 지나가는 말끝에 그런 일이 있었노라고 알렸다. 자연재해든 사람이든 내가 다치는 것은 괜찮지만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아픔을 겪으면 안된다는 마음이 늘 먼저다. 오랜 수행으로 머리에 들어있던 일원의 진리가 피부로 와닿으면서 삶에서 저절로 녹아들고 있음이다. 
 

수십 년 동안 써 온 사경노트가 글씨 한 자 흐트러짐 없어 그대로 수행이고 삶임을 보여준다.
수십 년 동안 써 온 사경노트가 글씨 한 자 흐트러짐 없어 그대로 수행이고 삶임을 보여준다.

“기도는 이뤄지게 돼있어요.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정성을 담아보세요.”

10년 전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을 때다. 의사도 가망 없다고 포기했지만 중환자실에 있는 남편을 위해 70일 동안 새벽마다 목욕재계하고 법신불전에 앉았다. 남편은 이후로 10년을 더 살았고 그가 쏟은 기도 정성을 나중에 알게 되면서 교당을 대하는 자세가 완전히 달라진 남편을 보는 것도 뿌듯하다. 

“기도는 크게 합니다. 남이 잘돼야 나도 잘되니 나만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체를 기도하니 내 것도 해결되더군요.”

천록을 움직이는 것이 기도라고 했던가. 그만큼 기도는 사심이 없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의 삶을 돌아보면 큰 경계가 한두 번이 아닌데도 그에겐 경계가 아닌지 기억 속에서 끌어내는데 오래 걸렸다. 남편이 고비를 넘기고 점차 회복되고 있을 때 그는 대장암을 만났다. 아무리 생사공부를 잘하고 있다고 여겨도 암이라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 무너지게 된다. 남편이 아프다고 자신이 감춰지진 않는다. 그러나 그에겐 암도 감기와 다를 바 없이 수술 받고 약 먹고 그렇게 병원을 다녔다. 사경노트의 글씨가 처음과 끝이 같듯이 일상의 경계들이 그렇게 잔잔했다. 수행이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삶에 녹아든 독경·기도·사경이 본래 마음을 돌이키게 했다. 그렇게 ‘나’없이 전체가 하나로 엮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저는 운이 참 좋아요. 좋은 부모, 좋은 형제, 좋은 시댁, 좋은 교당, 훌륭하신 교무님들만 만났어요. 주위에 안좋은 인연 하나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 내 안에 펄펄 살아있는 ‘나’가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에게 교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학교지요. 늘 배우러 가는 곳입니다. 원불교는 심법 공부하는 곳이니 얼마나 좋습니까.”

명륜교당 안효길 교무에게 취재를 의뢰하니 단박에 그를 추천하며 “가장 제대로 된 법사로 인정받는 분이고 교무 입장에서 보람 있는 모범교도다. 연구하고 질문 많이 하면서 자꾸 법으로 단련돼가는 교도를 보면 힘이 난다. 이런 어른들 심법으로 교당의 모든 어려움을 다 이겨내게 된다”고 전했다. 

[2020년 10월 09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