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원광대학병원교당 교무

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누구도 원하지 않는 코로나19와의 불편한 동행이 정말 오래 유지되고 있습니다. 잠깐 견디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 사태가 지나가면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습니다. 원하든 아니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코로나 시대에 맞게 삶의 방식을 바꾸며 살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이미 겪어버린 새로운 경험들은 과거로의 복귀를 쉽지 않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다고 과도하게 벌벌 떨며 걱정으로 생병이 나거나 부정적으로만 볼 일도 아닙니다. 신비하게도 인간의 DNA는 어떻게든 변화에 적응하는 쪽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 살게 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유토피아를 향한 혁신이 필요
재앙은 불행 중 다행인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염병이나 자연재해 같이 우연히 일어나는 재난, 재앙은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의식과 문명을 건설하게 하는 선물이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재앙유토피아라 부릅니다. 인간은 어떤 재앙의 패배자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재앙이 의외로 이전보다 살기 좋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기반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이해관계자들의 온갖 저항 때문에 작은 것 하나도 변화시키는 일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특히 기득권층은 힘도 막강한데다 더 변화를 싫어하는 특성이 있어서 그야말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회의 큰 틀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재지변이 불행 중 다행으로 변화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에 개선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누구도 감히, 어디서부터 손댈지 모르는 문화와 의식과 시스템의 작동을 일시에 강제로 멈추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좋든 싫든 따라야만 하는 강제 정지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잠시, 아니 생각보다 아주 길게 강제적으로 정지당한 채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갈 새판을 짜야 하는 과업의 시기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나라나 교단이나 조직이나 골조부터 다 바꿔 가장 살기 좋은 낙원을 건설하기에 다시없을 최적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이 위기를 기회 삼아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기에 이르렀으니 5년 후 탄생할 유토피아를 그려보면 이 와중에도 한편으론 가슴이 설렙니다.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갈 새판을 준비하는 
  과업의 시기

끝없는 생산과 소비 바뀌어야
이때 우리 각자가 해야 할 혁신을 두 가지로 생각해 봅니다.  첫째는 소비에 대한 태도입니다. 돌아보면 지난 몇 십년간 우리 사회는 성장이나 발전 지상주의에 빠져 인간의 안전이나 복지, 심신의 건강이나 좋은 삶은 돌보지 않았습니다. 경제발전이나 성장은 사람이 더 살기 좋고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법인데 주객이 전도되어 돈이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신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보다 물질이 중심에 서게 되면 그로 인해 인간이 겪는 괴로움은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가 됩니다. 대종사님은 물질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이 극도에 치달을 앞으로의 병증을 일제치하에서도 미리 내다보시고 그로부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묘방으로 일원대도 정법을 열어주셨습니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부추기며 무한생산을 조장합니다. 새것이 나오면 정신 못 차리게 홍보를 쏟아내며 버리고 바꾸고 부수고 다시 짓게 만듭니다. 너만 없고 남들은 다 가졌다고 비교를 조장해 성장의 동력을 삼는 자본주의는 끝없이 인간을 지배하며 멈추지 못하고 질주합니다. 끝없는 생산과 소비로 인해 자연은 무참히 난개발 되고 쓰레기로 몸살하며 죽어갑니다. 개발의 명분으로 동물들의 서식지를 계속 침범하니 야생 동물에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의 몸으로 옮겨와 자연이 인간을 역습해 온 것이 지금의 전염병이며, 우리의 소비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불행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지금 같은 과잉생산과 무한소비가 계속 될 경우 지구는 생태계 붕괴로 멸망할 것이라는 인식이 서양에는 팽배합니다. 이대로라면 2050년 즈음 이 지구는 더 이상 사람이 살수 없는 거주 불가능한 땅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 그 난폭한 질주를 멈추라고 만족을 모르고 달리는 삶을 강제로 정지시켜 준 것이 코로나19입니다. 본의 아니게 사람도 쉬고, 사회도, 자연도 휴식, 쉼에 들어간 이 기간을 사회적 명상의 시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답답하고 고통스럽지만 좀 덜 움직이고 덜 소비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려, 지속적으로 미래 인류와 자연이 공생하는 지구별의 건강을 위해 지혜로운 판단과 결단력 있는 실천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유럽인의 82%는 미래 세대가 쓸 자원을 자신들이 이미 다 끌어다 써버려서 그 책임감과 미안함으로 자신의 소비에 죄의식을 느낀다고 합니다. 범국민적 소비포기운동에 독일 대학생의 1/3이 참여하고 있으며, 기름소비가 가장 많은 비행기를 타기보다 느리더라도 가급적 기차나 자전거, 도보로 이동하고 여행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합니다. 

 

무한 소비와 경쟁적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사회의
  고정관념 벗고 
  시대에 맞는 성찰 필요


고정관념 벗고 시대에 맞는 성찰 필요
우리도 이제 무한 소비와 경쟁적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과 사회에 가장 좋은 삶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남이 하니 따라하는, 타인의 시선에 맞춰 살기보다 내가 좋아하고 감탄할 수 있는 삶을 살 것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함께할 또 하나의 혁신의 방향은 형식이나 구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형식과 체면에 너무 큰 에너지를 남용하고 살던 패턴을 바꿔갈 적기를 만났습니다. 이번 재앙은 장례나 결혼, 명절을 비롯한 온갖 잔치, 신앙생활, 병문안 등, 관행으로 이어오던 방식을 멈추고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추석 명절이면 온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야 한다고 의심 없이 믿었던 풍속까지 바꿔놓았습니다. 

기존의 방식을 무조건 반복하기보다 형식과 체면과 관행과 고정관념을 다 벗어놓고 상황과 시대에 맞는 적실한 길을 성찰해 찾으라고 요구합니다. 기존의 틀을 벗어나 본질과 핵심에 충실하는 방법, 진심어린 마음을 표하는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서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찾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맞는 참 좋은 사회,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는 어떤 것인지 스스로 찾아내 우리가 세상의 길잡이가 되어주어야 할 사명을 실현할 적기입니다.

방역에 있어 이상적 모델이 한국형이라는 것에 누구도 이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서양이, 미국이 주도해 가르치고 동양이나 다른 나라들이 따르고 배우는 것이 정해진 질서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가장 모범적으로 앞서 달리면서 모방자 추격자에서 개척자 선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잠재력이면 한국사회를 가장 멋진 모델국가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내친 김에 당당히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계속 달려 나가봄직 합니다. K방역이라고 부를 만큼 성숙한 대응모델을 보여준 것처럼 우리 사회 전반을 변혁하고, 통일 문제에도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자신감을 가지고 실천해 볼 때입니다. 

봉쇄하지 않아도 스스로 이동을 제한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수준 높은 민주시민의식을 만천하에 보여준 민족입니다. 우리도 세상도 진정한 세계의 지도국이 어디인지를 눈치 챘습니다. 우리는 지도자운이 좋았고 정부와 지도자는 국민 운이 참 좋았습니다. 그게 다 국운입니다. 

주세성자는 인류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오시지만, 그 법이 길이 유전될 조건, 가성비를 고려하지 않으셨을 리 없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빛이 될 것을 미리 아시고, 적어도 오만년은 유지될 법의 못자리판으로 주세성자 대종사께서 선택하신 그 땅 한반도의 여명의 시절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게 다 교운입니다. 

[2020년 10월 0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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