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내고 나눌수록 커지는 기쁨

김준안 교수
김준안 교수

[원불교신문=김준안 교수] 요즘 필자는 모 TV 방송국에서 방영하는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그램을 유념해서 챙겨보고 있다. ‘신박하다’는 ‘새롭고 놀랍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인데, 필자는 ‘신박한 정리’를 볼 때마다 프로그램명대로 새롭고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신박한 정리’가 지향하는 것은 정리를 의뢰한 이의 집에서 물건을 덜어내고, 재배치하거나 재활용함으로써 의뢰인의 삶까지도 변화시키는 것이다. 공익적인 면에서는 의뢰인에게 필요하진 않지만 사용할만한 물건은 필요한 이에게 기부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소 짐스럽게 여겨지던 물건들을 필요한 이에게 기부함으로써 나눔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신박한 정리팀에 자신의 집 정리를 의뢰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물건을 덜어내는 순간, 신기하게도 내 인생도 정리되기 시작했다”는 말을 했다. 감동에 겨워 눈물까지 흘리는 이도 있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맞는 반응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신박한 정리’의 의뢰인만큼은 아니지만 필자에게도 ‘덜어내고 나누며’ 기쁨을 누린 경험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몇 년 전 가을 어느 날 필자에게 사과가 많이 생긴 때가 있었다. 이날 필자는 생활공간인 보은원 현관에서 만난 후배에게 “나에게 사과가 좀 많이 있는데 몇 개 줄까요?”하고 물었다. 후배는 “네, 주세요. 전 없어서 못 먹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배에게 기분 좋게 사과 몇 개를 건네줬다. 그런데 “전 없어서 못 먹어요”라던 후배의 말이 필자의 귓가를 계속 맴돌았다. 사실 보은원에는 많은 교무가 함께 살지만 실제로는 다 1인 가구이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여유분을 나누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필자는 보은원 1층 입구 쪽에 ‘나눔의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함께 생활하는 보은원 1층 가족들에게도 취지를 알리고 활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얼마간 진행해보니 반응이 괜찮았다. 지금은 보은원 가족들과 협의해 흰색 둥근 탁자 하나를 마련해 ‘나눔 테이블’이라 이름 붙이고 여분의 물품 교환 장소로 활용하고 있는데 1층뿐만 아니라 2층 식구들까지도 잘 활용하고 있다. ‘나눔 테이블’에 놓이는 물품은 아주 다양하다. 떡, 빵, 과일, 구운 달걀, 가방, 옷, 신발, 커피포트, 토스터기, 크고 작은 컵, 접시, 화장품, 의자…. 다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나눔 테이블에 올려놓은 물품은 대개 1~2일 사이에 거의 새 주인을 만나게 되는데 새 주인을 만나지 못한 물품은 본 주인이 도로 가져가기 때문에 남은 물품으로 인한 어려움은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신박한 정리’를 우리들 삶 속에서 먼저 실천해보자. 우리 인생은 유념해서 빼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덧셈이 되는 구조이다. 한때는 좋아서 사들인 물건이지만 지금은 아무런 의미나 기쁨을 주지 못하는 물건이 있다면 자신과 인연이 다했다 생각하고 새 주인을 찾아주도록 하자. 나아가 교당에서도 ‘신박한 정리’를 실천해보자. 교도들끼리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는 물품은 나눔 공간을 마련해 활용해도 좋을 것이고, 부피가 큰 물건이면 사진을 찍어 밴드에 올리거나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려 필요로 하는 이를 먼저 찾은 후 물품을 배달해주거나 가지러 오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필요 없는 물건이 누군가에겐 절실하게 필요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이다. 과거에 비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편리한 매체들이 많이 생겼다. 우린 그 매체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 

올 가을은 ‘비움의 계절’로 정하고, ‘신박한 정리’로 빼기와 나누기의 기쁨을 누리는 어느 해보다 풍요로운 가을을 만들어보자. 

 /원광디지털대학교

[2020년 10월 1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