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24장에서는 “세상을 떠나는 이의 가장 중요한 일은 최후의 일념을 청정히 챙김이요, 세상에 나서는 이의 가장 중요한 일은 최초의 발원을 크게 세움이니, 성불제중의 원이 모든 발원 가운데 으뜸이니라”라고 했다.

원불교에서는 사람의 생애가 한 번의 탄생과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곧 육신은 비록 생명이 다할지라도 영혼은 영원한 세상을 통해 무한히 반복하면서 새 몸을 받는다. 따라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다. 이렇게 무한히 반복되는 삶과 죽음이 중생에게는 한없는 고통이나 불보살들은 즐겁게 받아들인다. 곧 세상의 탐욕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중생은 영원히 육도를 윤회하는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탐욕과 성냄, 그리고 아상(我相)의 어리석음을 내려놓은 불보살은 생로병사에 구애됨 없이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마주하는 것이다. 

정산종사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청정일념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이는 대종사의 ‘최후일념이 곧 최초일념’이라는 말씀과 같다. 그렇다면 사람이 최후에 챙겨야 할 청정일념이란 무엇일까? 자신이 한 생 동안 알게 모르게 쌓아온 모든 죄업을 참회 반성하는 것이며, 또 자신의 선업은 사은의 은혜로 이뤄진 것일 뿐 나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서 ‘아상’에서 비롯되는 모든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다. 

한 생각이 ‘아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바로 불보살의 초문에 들어선 법강항마위다. 이렇게 사(私)없는 마음으로 최후일념을 챙긴 사람이라야 다시 새 몸을 받을 때 오직 공중을 위하고 성불제중 하겠다는 최초일념을 세울 수 있다. 정산종사가 성불제중의 서원이 모든 발원 중 으뜸이라고 한 것은 사심 가득한 중생들이 차마 세울 수 없는 원력이기 때문이다.

‘아상’ 없는 마음으로 성불제중의 원력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은 영원한 강자인 여래가 되고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한 경절문(徑截門)이라 할 것이다. 항마위에 오른 도인일지라도 다시 ‘아상’을 낸다면 바로 타락해서 다시 한없는 윤회를 반복하게 된다. 그러므로 최후일념과 최초일념은 단지 한 생의 탄생과 죽음에만 그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상을 통해 챙기고 또 챙겨야 하는 신앙과 수행의 표준이다. 일상수행의 요법을 조석으로 외게 하신 대종사의 뜻이 여기에 있다.

금강경에서는 모든 복덕 중 부처님의 법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모든 복덕의 근본(福德性)으로 그 크기가 헤아릴 수 없다고 했다. 따라서 우리가 아침마다 성불제중의 원력을 세우고 ‘아상’없이 공도에 헌신하며 살고, 밤에는 참회 반성하는 최후일념을 챙기는 일상의 삶을 쉬지 않는다면 영생을 자유하는 힘과 무궁무진한 복락의 열쇠를 양손에 쥔 참 여래가 될 것이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1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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