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도 교무
권정도 교무

[원불교신문=권정도 교무]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23장에서는 “서원과 욕심이 비슷하나 천양의 차가 있나니, 서원은 나를 떠나 공(公)을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요, 욕심은 나를 중심으로 사(私)를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니라”라고 했다.

필자는 그동안 사심을 버리고 공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원상 진리의 체성에 합하고 위력을 얻는 빠른 길임을 밝혀 왔다. 그렇다면 원불교에서 완전히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공심(公心)을 얻은 사람의 경지는 어느 수행 단계를 말하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세계를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로 표현한다. 욕계는 온갖 욕망 생활을 하는 존재들이 사는 세계로 육도를 윤회하는 세계를 말하니, ‘보통급’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색계는 욕계의 욕망은 대체로 떠났으나 미세한 진심(嗔心)이 남아 있는 세계니, ‘특신급’의 공부표준일 것이다. 무색계는 탐욕과 진심이 모두 사라졌으나 아직 ‘나(我)’라는 생각이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세계니, ‘법마상전급’의 공부표준일 것이다. 욕계의 탐심, 색계의 진심, 무색계의 치심을 넘어 ‘나’라는 집착을 완전히 버려야 생사를 해탈한 것이라고 말한다.

원불교에서는 ‘나’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떨어진 경지를 ‘법강항마위’라고 말한다. 곧 항마위는 ‘생․로․병․사에 해탈을 얻은 사람의 위’로써 더 이상 ‘나’에 대한 욕심과 집착이 사라지고 온전히 ‘공’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를 떠나 오직 ‘공’을 위해 구하는 서원의 삶은 곧 중생을 제도하고 세상의 고통을 구원하려는 성자의 삶을 말한다. 항마위를 ‘초성위’라고 하는 것은 비로소 중생의 때를 벗고 성자의 반열에 오르기는 했으나, 아직 중생을 구제하고 교화하는 권능을 온전히 갖추지는 못한 초보 성자라는 의미도 된다. 따라서 항마위 이상의 도인은 교화를 통해 중생을 제도의 문으로 이끄는 권능을 갖추는 것이 신앙과 수행의 표준이 된다. 그렇게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중생을 낙원으로 인도하는 교화의 능력이 커질 때 출가위가 된다. 대산종사는 출가위가 늙으면 ‘여래’라고 했으니, 이 정도의 성자는 시간을 거듭할수록 교화의 만능을 갖추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교에서 항마위가 된다는 것은 어떤 사심도 없이 오직 공도를 향해 몸과 마음을 헌신해 갈 준비가 된다는 것이다. 곧 구인선진이 대종사의 명(命)에 죽음을 불사하듯 적어도 종법사나 교단의 명에 수화불피(水火不避)의 마음으로 임할 자세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아라한도 ‘아상’을 내는 순간 바로 중생으로 타락한다고 했다. 항마위 정도의 도인이라면 공도와 중생제도에 자신을 오롯이 바친다는 ‘공심선서(公心宣誓)’를 통해 불퇴전하는 새 정법회상의 법위 전통을 만들어 가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1월  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