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교무
허석 교무

[원불교신문=허석 교무] 예비교무들과 함께 원불교 교리의 강령(綱領)이 최초로 선포된 변산 봉래정사를 순례했다. 봉래산 아홉 골짜기 마다 소태산의 숨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100년 전 이곳에서 청년 소태산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만 생령을 구원하기 위한 법 그물을 짜던 그의 포부와 경륜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나는 소태산과 같은 꿈을 꾸며 그만큼의 적공을 하고 있는가?

소태산은 세상이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돈의 병, 원망의 병, 의뢰의 병, 배울 줄 모르는 병, 가르질 줄 모르는 병, 공익심이 없는 병. 육신의 병보다 더 깊고 근본적인 마음의 병이요 문명의 병이었다. 이 병을 그대로 두면 전 생령이 고통의 바다에 빠지게 될 것이니, 정신개벽을 통해 문명의 대 전환을 이룸으로써 이 땅에 낙원세상을 건설하자고 했다. 사은·사요, 삼학·팔조의 교강은 바로 그 구체적인 처방전이다.

그 중 인류가 함께 신앙해야 할 길을 사은·사요로 밝혀 주었다. 사은(四恩)은 우주만유 허공법계 전체를 부처로 모시며 일마다 은혜를 실천하여 이 땅에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신앙의 강령이다. 원망 생활을 감사 생활로 돌리고, 해독의 관계를 은혜의 관계로 돌리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회를 혼자서 은혜로 돌릴 수는 없다. 사요(四要)를 통해 그 사회의 문화와 제도가 변화해야 은혜를 은혜로 느끼고, 부처가 부처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사요는 개인의 의식과 생활을 진보된 방향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사회 전체를 상향 평등케 하는 불공법이다. 과거의 모든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제도, 문화를 합리적이고 평등하게 바꾸며, 나 먼저 자력을 양성하고 지자(智者)에게 배우며, 자타(自他)에 국한 없이 가르치고 공(公)을 위해 일하고 이 사회를 함께 그런 문화와 제도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개인의 진리체험과 믿음을 통한 구원이 대부분이었던 기존의 종교적 신앙을 넘어서 세상을 진화시키는 길을 제시한 사요야말로 원불교 교강의 특징이자 정체성이다. 개인의 개별적 신앙으로는 평화세상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바람직한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가야 한다. 개인의 자각을 촉구함과 동시에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 사요는 세상의 구원을 통해 개인의 구원을 더불어 이루자는 것이다. 원만 평등한 일원의 진리가 현실 속에 생생히 구현되고 있음을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체감하기 위해서는 우리 먼저 앞장서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를 실천해 세상 도처에 있는 불합리·불평등·결함된 사회를 은혜가 충만하고 원만 평등한 세상으로 건설해 나가야 한다. 

사요의 정신이 더욱 살아나야 한다. 내 삶 속에서, 우리 교단의 곳곳에서, 이 세상의 구석구석에서 사요가 생생히 작동해 나를 새롭게,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새롭게 해나가자.

/원광대학교

[2020년 11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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