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제 교도
남성제 교도

[원불교신문=남성제 교도] 필자가 살고 있는 강원도는 어디서나 산과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근무지인 강원대학교도 산을 끼고 건물들이 지어져 곳곳에서 다양한 나무들을 볼 수 있다. 많은 나무들 덕분에 캠퍼스는 봄과 여름에는 푸르름으로, 가을에는 울긋 불긋함으로 물들어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개인적으로 자연과 어우러진 캠퍼스의 경치를 매우 좋아한다. 그런데 날씨가 눈에 띄게 쌀쌀해진 며칠 전부터는 나뭇잎들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여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 늘어가고 있다. 

창밖의 나무를 보며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그대로 붙어있으면서 같이 겨울을 나도 좋으련만 왜 나뭇잎들은 날씨가 추워지면 항상 떨어지는 것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온도와 수분 부족에 적응하려는 나무의 지혜라고 한다. 겨울이 되면 낮의 길이가 짧아져 햇빛을 받는 시간이 줄어들고 추위 때문에 활동이 둔해져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리는 힘도 약해진다. 그래서 물과 양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필요한 곳에만 물과 양분을 사용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겨울에 잎이 떨어져야만 나무가 필요한 양분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남아 다음 해에 또 다시 아름다운 잎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순리 따라 버려야 할 때는 버리고 포기해야 할 때는 미련 없이 포기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더 크고 아름다운 잎과 열매를 맺고 오래오래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는 것. 나무의 잎을 떨구는 행위는 큰 성장과 영원한 발전을 위한 작은 비움의 지혜이자 대자연의 섭리이다.

나무의 지혜를 나 자신의 모습과 대조해 본다. 직장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업무에서 내가 예상한 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이 내 생각과 다르게 반응을 하는 경우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주견과 생각을 놓아버리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실행은 잘되지 않는다. 또한 법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치면 다 받게 되는 이치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눈에 보이는 세속의 욕심들에 집착해 무엇 하나 놓아버리기가 어렵다. 좌선할 때 빈 마음을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잡념이 올라오는 것도 무엇이나 비우고 놓아버리기보다는 집착하고 채우는데 익숙해서일 것이다. 

정산종사는 마음이 허공같이 비고 보면 윤회의 승강을 벗어나나니 이 빈 마음을 근본하면 항상 진급이 되고 이 빈 마음을 바탕해 상(相)을 떠나면 항상 은혜를 입게 된다고 했다. 대산종사는 성인들은 크게 텅 빈 마음(大空心)과 크게 공변된 마음(大公心)으로 일체 생령을 구제한다고 했고, 또한 크게 빈 마음에서 큰 지혜가 솟고 큰 지혜에서 큰 사상이 나오며 큰 사상에서 세계주의가 나오고 세계주의에서 큰 공심이 나온다고 했다. 우리가 영원한 세상에 진급되고 은혜 입는 길로 나아가는 것도, 우리의 서원인 부처되고 세상을 건지는 일도 모두 빈 마음에 근본한다. 비우지 않고서는 영원하고 참다운 행복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 사로잡혀 어떤 것이든 버리고 포기할 줄 모른다. 그러한 세상의 흐름에서 역류하여 작은 이해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와 내 것을 놓아버리고 전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참 공부인이다. 그동안 세속적인 욕심에 물들어 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사사로운 것을 놓아버리고 서원을 위하여 더욱 정진하는 공부인이 되기로 다짐한다. 비울 줄 아는 나무의 지혜를 본받아 정진하는 공부인들이 세상에 가득 차기를 기원한다.

/춘천교당

[2020년 11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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