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석 교무
허석 교무

[원불교신문=허석 교무] 사람의 마음은 지극히 미묘하여 잡으면 있어지고 놓으면 없어진다. 그러니 챙기지 아니하고 어찌 그 마음을 닦을 수 있겠는가. 소태산은 우리가 왜 몸과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해야 하는지를 이렇게 설명해 줬다. 수행을 시작하면 내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 탐·진·치 삼독과 죄업에 침륜당하고 변질됐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으로도 오염되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본래 맑고 밝고 신령스러운 본성을 만나게 된다.

원불교 수행은 직업을 그만두고, 일상생활을 떠나서 하는 특별한 공부가 아니다. 수행이 일에 도움을 주고, 일이 수행에 도움을 주는 선순환이 되도록 구상됐다. 또한 수행을 제대로 하면 마음의 자유를 얻을 뿐만 아니라 보은봉공의 실적도 쌓도록 하는 대승적 수행이다. 정전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를 하나하나 공부하고 실천할수록 이러한 교법의 대의가 녹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수행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자력과 타력이 함께 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나의 노력과 스승의 지도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스승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아 모시는 것이다. 수행을 제대로 해 보겠다는 서원과 공부심은 스승을 찾아 모시는 원동력이다. 스승의 말씀과 기운, 심법을 통해 받는 맞춤형 지도는 수행자의 공부를 바르게 인도하는 힘이 된다. 우리는 스승을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교당과 교화단을 스승 모시고 공부하는 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교법과 스승을 만났어도, 그것을 활용해 공부하는 수행의 주체는 나다. 정전 솔성요론에서는 ‘일일시시(日日時時)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칠 것’이라 했다. 이는 가르치는 ‘나’를 바로 세우고 가르침 받아야 할 ‘나’를 찾아 성찰하고 반성하고 챙기라는 말씀이다. 자각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가르치고 배워나가야 한다. 내가 나를 가르치는 진실된 수행자가 되면 내 삶이 변화하고, 남을 가르치고 교화하는 데도 힘이 생긴다.

학창시절, 한 스승으로부터 마음공부 재미있게 하느냐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깊이 새기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씀의 의미가 소중하게 다가온다.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재미가 아니라 수행을 함으로써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샘솟는 심락을 느끼는지, 그래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즐겁고 기쁘고 유익한 낙원세계를 만들고 있는지 물어보신 말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소태산은 “참으로 영원한 나의 소유는 정법에 대한 서원과 그것을 수행한 마음의 힘”이라고 했다. 참으로 가치 있고 영원한 나의 소유에 공을 들이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전도몽상(顚倒夢想)하지 않고, 진짜에 공들이며 크게 정진하고 적공하여 영생의 행복자 되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나 정법 회상을 만난 보람이 아닐까 싶다.

[2020년 12월 0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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