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교무
조경철 교무

[원불교신문=조경철 교무] 어느새 12월입니다. 우리에게 착(着)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코로나 19로 인해 정말 힘겨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흘러 사시순환의 이치 따라 봄을 지나 여름을 건너고 가을을 넘어 겨울의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12월은 외로이 한 장 남은 달력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한 해의 마지막 달입니다. 우리는 12월이 되면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기 위한 분주한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서 얼마 후면 새 달력의 첫 장을 넘기게 될 것입니다.

바쁘게 보낸 하루를 마감하고 나면 따끈한 욕조에 몸을 담구며 심신의 피로를 풀고, 샤워기의 세찬 물줄기에 하루종일 내 몸에 달라붙었던 것들을 떼어내곤 하듯이, 12월은 하루가 아니라 1년 동안 내게 달라붙었던 것들을 떼어내는 시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는 흔히 새로 산 옷이 몸에 딱 맞을 때 “옷이 몸에 착 붙네”라고 하기도 하고 음식이 내 입맛에 잘 맞을 때 “음식이 입에 착 붙네”라고 하기도 합니다. ‘착’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물체가 바싹 다가붙거나 끈기 있게 달라붙는 모양’ 그리고 ‘입맛에 딱 맞는 모양’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자에도 ‘착(着)’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뜻 역시 ‘붙는 것’입니다. 발음이 같으면서 그 의미 또한 같은 묘한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착’이라는 한자를 파자해 보면 ‘양(羊)’과 ‘목(目)’이 결합된 것으로 ‘양의 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착’의 어원을 찾아보면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양이 경계심을 풀고 다가섰다가 사람에게 잡히게 되고 그 양의 털을 깎아 옷을 만들어 입으니 몸에 착 맞았다’해서 ‘붙을 착’이 됐다고 합니다. 

원불교에서는 사람이 일생을 마치고 열반에 들게 되면 ‘원력을 굳게 세운 후 착(着) 없이 길을 떠나오’라고 천도발원을 올려 드립니다. 해탈천도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 바로 착을 떼어내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이 착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업(業)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업이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으로 전생에 지은 것을 이생에 받는 업이 있고 이생에 내가 지은 업이 있으며 착 또한 이미 과거에 내게 달라붙은 것이 있고 지금 내 마음이 달려가 달라붙은 것이 있는 것입니다.

‘달라붙었다’는 것은 그만큼 떼어내기 어렵다는 것을 뜻하므로 애초에 붙지 않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이미 달라붙었다면 더 굳어지기 전에 떼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맛있는 먹잇감에 정신이 팔린 양이 경계심을 푸는 순간 사람에게 잡혀가듯이 우리의 일상에서 잠시의 방심이 있을 때 수많은 경계들이 어김없이 우리를 습격해 올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착 달라붙어 떠나지 않고 있는 코로나19가 과연 내게 붙은 것인지 내가 붙은 것인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생각해 보며 내 일거수일투족으로 짓고 맺는 업연의 무서움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고 무엇에 착하고 있는지 반조하고 또 반조하며 살아야 할 시기인 듯 합니다.

원불교인의 일과를 아침에는 정신수양, 낮에는 보은봉공, 저녁에는 참회반성하라 하신 뜻은 착을 방지하는 것이요, 이를 통해 업을 쌓지 말라는 것입니다. 조금은 밋밋한 삶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착으로부터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유일한 방지책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착을 떼어내고 업을 소멸하는 유종의 미를 거두시기를.

/군산교당

[2020년 12월 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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