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철 교무
조경철 교무

[원불교신문=조경철 교무] 원불교를 상징하는 수많은 키워드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개교의 동기라고 생각합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 원불교를 개교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어떻게 낙원으로 인도할 것인가?

바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인도하겠노라고 ‘개교의 동기’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에 대하여 확실한 인지가 부족한 것은 아닌지? ‘진리적 종교’의 정의와 ‘신앙’의 행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게 되면 잘못된 신앙으로 빠져들게 되고, ‘사실적 도덕’의 정의와 ‘훈련’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게 되면 현실 생활에서 오류를 범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진리적 종교’와 ‘사실적 도덕’에 대해 이분법적인 사고를 해 온 것은 아닌가 물음표를 던져 봅니다. 풍습과 관행으로 이어오던 절대자를 향한 맹목적 믿음과 기복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신앙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게 되고, 이것이 고착되며 종교 안에서의 행태와 현실 생활에서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종교 따로, 현실 따로라는 이중적인 삶을 이어가면서 현대사회의 종교는 삶의 악세사리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진리적 종교’와 ‘사실적 도덕’이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를 의미합니다. 우주 만유의 질서를 총섭 하는 진리를 인류사회에 적용할 때 사실적 도덕으로 화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범위 안에 ‘생’과 ‘사’가 모두 포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생’에 집착함으로써 ‘삶’의 전부를 보지 못하고 반쪽짜리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이 ‘진리적 종교’와 ‘사실적 도덕’을 분리함으로써 현실 생활에서 우주 질서에 역행하게 되고 이를 통해 스스로 현실적인 고통을 장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인도품 1장에서 ‘도’란 ‘곧 길을 이름이요, 길이라 함은 무엇이든지 떳떳이 행하는 것’이라 밝혀 주셨고, ‘덕’이란 ‘어느 곳 어느 일을 막론하고 오직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라 하시며 ‘도의 원리를 알아 정성스럽게 항상 덕을 닦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떳떳이 행하면 은혜가 나타나는 것이 바로 ‘사실적 도덕’이며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반복된 ‘훈련’으로 비롯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도덕’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이며 ‘ 법이 외적 규제를 가하는 데 비해, 도덕은 내적 규제로 작동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현실세계에는 법이 있고 규범이 있고 도덕이 있습니다. 종교의 역할은 법적 제재를 받기 이전의 단계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나 바람직한 행동 규범’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규범·도덕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그 약속이 강압적이거나 편중될 경우 사실적 도덕의 기준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공통의 행복을 위한 약속의 기준이 되는 법과 규범과 도덕이 ‘보편적·불변적이며 사실에 분명하게 맞아 떨어지는 참된 진리’와 일치하는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부 종교인들이 ‘진리’를 ‘도덕’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독선적 교리 해석을 통해 대중을 오도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검증을 무시하거나 오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란 우주 만유를 총섭하는 ‘진리’와 ‘현실’을 연결하는 중간자이며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 승화시켜 현실 속에서 ‘광대무량한 낙원세계’를 건설하는 일터가 아닐까요? 

[2020년 11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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