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보 교무
신은보 교무

[원불교신문=신은보 교무] “페스트 균은 절대 죽지도 소멸하지 않을 것이고 참을성 있게 계속 기다리고 있다가 아마도 언젠가는 인간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다시 그 쥐들을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몰아넣을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중) 

2차 세계대전 이후 물질문명의 급속한 발전과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화의 과정을 목도한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까뮈는 그의 소설을 통해 페스트(흑사병)로 폐허가 된 도시 안에서 암흑의 시기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울림을 전달했다. 페스트에서 폐쇄되었던 도시에서 사람들이 처음 겪은 것은 가족 또는 연인과의 생이별에 대한 슬픔, 고향이나 옛 생활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가까운 측근들의 전염소식에 자신 또한 안전하지 않다라는 극도의 불안으로 인한 공포감이었다. 

소설의 상황은 격리기간을 겪은 우리들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매우 비슷하다. 소설의 주인공 리외는 페스트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며 자신의 본분에 충실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충실함보다 망설임, 대면보다 회피, 현실보다 헛된 기대를 앞세우기 쉽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제 누구든지 격리생활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다. 상대방이 안전한 상태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청했던 악수마저도 이제는 확인할 길이 묘연해졌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상대에게 주는 자신의 첫인상이라는 점이 못마땅한 젊은 세대들은 팔꿈치를 서로 맞대거나 합장을 힙(hip)한 인사법으로시도하고있다. 

합장인사는 이제 니 것 내 것도 아닌 악수를 대체한 ‘코로나인사법’으로 자리잡고 있는 중이며 종교문화뿐만 아닌 모든 분야에서 고정된 실체는 더 이상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 통하는 때요 사통 오달이 대 도인의 심경이니, 국한에 얽매이지 말고 원망이나 섭섭은 풀기에 힘쓰라. 그러하면 만인이 다 은인이 되어 태평 세계가 절로 이룩되리라.”(정산종사법어  유촉편(遺囑編) 6장)

니 것 내 것, 니 편 내 편, 니 일 내 일, 국한에 얽매이게 될 때 우리는 망설이고, 회피하고, 헛된 기대를 갖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전염병이 되어 현실을 직시하지도 인정하지도 대응하지도 못하게 한다. 이 마음의 병이 해결되지 않는 한 코로나 19로 인한 불행과 교훈은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원망이나 섭섭은 풀어버리고 국한에 얽매이지 않는 ‘사통오달의 도인’이 곧 코로나 19의 해결사이며 태평세계의 주역임을 정산종사는 오늘도 우리를 깨우친다.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2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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