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보 교무
신은보 교무

[원불교신문=신은보 교무] 지난주 인기뉴스 1위를 차지한 혜민 스님의 ‘풀소유’논란은 많은 신앙인들에게 여러 화두거리를 제공하며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를 여실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공(空)에 대한 깨달음을 기반으로 무소유의 가르침과 행복의 가치를 연결함으로써 소유욕에 매몰된 현대인들에게 적지 않은 울림을 주었던 그가, 방송에서 보여준 풀(full)소유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실망했다. 사실 종교인의 이중적 모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무출신이 갖추어야할 역량’에 대한 질문에 뛰어난 교법해석능력도, 다양한 자격증의 획득도 아닌 ‘출가자로서의 수양력’을 원하는 대중들의 바람이 필자에게는 부끄럽게 여겨진다. 

과거 대중적이고 저렴한 가격으로 소박하게 입을 수 있던 흰저고리에 검은치마는 지금 얼마 남지 않은 장인들에 의해 맞춤 제작해 기성복의 몇 배에 해당하는 절대 소박하지 않은 고가의 ‘정복’이 됐다. 불합리한 차별로부터 평등세계를 지향한 교단 창립정신의 맥을 잇기 위해서도 의복의 ‘풀소유’는 해결돼야할 문제이다. 혜민스님의 남산타워가 보이는 고가의 주택이 문제였던 것일까 그 안에 그가 앉고있는 듀오백 의자와 그가 마시는 커피머신이 문제였던 것일까. 소유하고픈 욕망 자체는 비난할 수 없다. 문제는 말로 표출한 부처의 가르침이 행으로 나투어진 실천과 해리됨으로서 언행이 일치하지 않은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대종사는 잠깐이라도 방을 떠날 때도 자물쇠를 채우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이유는 혹 견물생심으로 괜한 죄를 짓게 할까하여 그 죄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남이 탐심을 낼만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인과의 관점에서는 죄(罪)인 셈이다. 하물며 이를 관리하지 못하고 나아가 과시까지 한다면 잠재적 죄인들을 만드는데 원인을 제공하게 되는 것인데 어찌 자물쇠를 채우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산속에 있는 절을 마을과 동네로 끌어내려 왔을 때 이 같은 문제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예견한 대종사는 고혈마(膏血魔)가 되지 말아야 함을 당부했다. 

“우리의 생활을 항시 반성하여 보되 매일 여러 사람을 위하여 얼마나 이익을 주고, 이와 같은 의식 생활을 하는가 대조하여 만일 그만한 노력이 있었다면 이는 스스로 안심하려니와, 그만한 노력이 없이 다만 공중을 빙자하여 자기의 의식이나 안일만을 도모한다면 이는 한없는 세상에 큰 빚을 지는 것이며, 따라서 고혈마임을 면하지 못하나니 그대들은 이에 크게 각성할지어다” (대종경 교단품 10장).

대산종사 우리들에게 물으신다. “그대여! 그대의 생활은 지금 빙공영사(憑公營私)인가. 선공후사(先公後私)인가. 지공무사(至公無私)인가.” 

 /영산선학대학교

[2020년 12월 04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