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모습. 이 회의에서 ‘정면돌파전’ 구호가 제시됐다.
2019년 12월 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모습. 이 회의에서 ‘정면돌파전’ 구호가 제시됐다.

[원불교신문= 정창현 소장] ‘우리의 전진을 저해하는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 나가자!’ 북한이 지난해 12월 말에 열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내놓은 핵심구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20년 신년사를 하지 않고, 이 회의의 ‘결정서’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그는 2019년 신년사에서 “미국이 제재와 압박 작전을 계속할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이라고 표방했다. ‘정면돌파전’이 ‘새로운 길’, ‘새로운 전략노선’으로 제시된 셈이다. 그런데 ‘새로운 길’치고는 새롭지 않다. 북한이 과거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내놓은 구호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이라는 최악의 경제난에 당면했을 때도 북한은 ‘고난을 정면으로 돌파’하자고 했다. 물론 국내외 상황이 다르긴 하다. 


안보와 경제  챙기며 장기전 준비로 제시
북한이 ‘새로운 길’을 언급하자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등 또 다른 도발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직접적인 도발을 자제하고, 체제결속을 선택했다. 북미대화가 중단됐지만 북미 최고지도자 간의 친서 교환은 이어졌다. 

북한이 ‘자력갱생에 기초한 정면돌파전’을 표방한 데는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된 상황이 깔려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 장소인 베트남 하노이로 출발하기 전까지 북한 내부에서는 미국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와 협상타결에 대한 기대가 교차됐다. 

북한은 핵개발의 중심지인 영변핵단지를 폐쇄하는 대신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해주길 기대했다. 경제제재가 완화되면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미국은 국내 정치를 고려해 실무합의를 뒤집고 영변핵단지 외에 플러스알파(우라늄농축시설)를 요구했다. 협상은 결렬됐고, 김 위원장이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평양으로 돌아간 김 위원장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자력으로 ‘사회주의강국’ 건설을 완수하자며 자주 노선 관철, 자력으로 경제 건설, 주체적 역량 강화, 인민대중제일주의 구현, 당의 영도 강화 등을 강조했다. 

북미협상 결렬로 북미관계는 ‘장기적인 교착상태’가 불가피하고, ‘협상의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경제제재가 단기간에 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장기전’에서 승리하려면 내부적으로 제재를 버티는 ‘장기전체제’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미국과의 제재해제를 기대하지 말고, 노동당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민들의 불만요소를 줄이며, 무엇보다 경제분야 활성화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이 북한의 새로운 정세인식이고, ‘정면돌파전’을 구호로 내세운 배경이었다. 

북한이 내세운 정면돌파전의 두 축은 안보와 경제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새로운 전략무기를 개발하고,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경제 건설을 통해 제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0월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북한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4형) 등 핵·미사일 역량을 과시했다. 신형 잠수함도 계속 건조 중이다. 고체엔진 ICBM, 다탄두 ICBM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은 ‘보여주기’에 그쳤지만 미국의 압박이 강화되면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북한은 경제시스템을 지속적으로 개편하면서 경제분야의 성과를 주문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김 위원장이 첫 시찰대상으로 순천인비료공장을 선택하고, 이 공장을 준공한 후 ‘정면돌파전의 첫 승리’라고 크게 선전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북한은 자력갱생의 방법으로 크게 농업 생산성 증대, 에너지 자체 수급, 과학기술 개발, 주민생활 향상 등을 제시했다. ‘생색내기’식 성과를 지양하고, 주민생활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성과를 요구했다. 특히 지식경제시대에 맞는 첨단과학기술의 개발과 도입을 강조했다. 전반적인 과학기술을 “세계 첨단수준에 올려 세우고 과학기술의 주도적 역할에 의해 경제와 국방,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부문을 급속히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12월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군의 군부대 부지에 새로 완공한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의 모습. 북한은 ‘정면돌파전’의 주요사업으로 설정한 농업분야 성과를 위해 이 농장을 모범사례로 선전하고 있다.
2019년 12월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군의 군부대 부지에 새로 완공한 중평남새(채소)온실농장의 모습. 북한은 ‘정면돌파전’의 주요사업으로 설정한 농업분야 성과를 위해 이 농장을 모범사례로 선전하고 있다.

코로나19사태로 전반적인 변화 불가피
‘정면돌파전’ 구호가 처음 나올 때는 미국의 제재에 맞서 이를 돌파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북한도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예상치 못한 재난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은 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될 기미가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올 1월부터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완전 봉쇄했다. 아마도 코로나19 사태가 1년을 넘겨가며 장기화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경 봉쇄 후 북한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비상방역에 몰두했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진자가 나오진 않았지만 이로 인해 대외무역이 급감했다. 상당한 수입원이었던 관광이나 노동자 해외파견마저 끊겼다. 대대적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백두산 삼지연시 주택현대화 사업, 평안남도 양덕온천관광지구 개발 등을 완료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관광객 유치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여름에는 연이어 수해와 태풍 피해를 당해 예정된 건설 사업조차 미룬 채 피해복구에 집중했다. ‘정면돌파전’을 선언했지만 올 한해 북한은 코로나19 비상방역과 자연재해 복구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사태 때문에 북한은 군사적 도발을 자제하고,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수위조절을 했는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국의 국내정치와 대선 판도를 지켜보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국경 봉쇄를 기회로 활용해 자본주의 문화의 침투에 대비하고, “집단주의 생활양식 확립에 소홀히 하면 사회와 집단도 모르고 돈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를 없애자며 흐트러진 ‘사회주의 문화·생활양식’의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것은 집단주의 강화와 함께 대외개방에 대비하는 사전포석이기도 하다. 

이제 처음 의도와 달리 북한의 ‘정면돌파전’은 미국의 경제제재, 코로나19사태, 자연재해 등 삼중고(三重苦)에 대응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엄밀하게 말하면 ‘정면돌파전’은 새로운 정책노선이라고 보기 어렵다. 주민들을 향해 “제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에게 “제재와 압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방향성만 있지 실제적인 구체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내년 1월에 열겠다고 예고한 노동당 8차대회가 주목된다. 여기서는 새로운 경제발전5개년 계획이 발표될 것이다. 북한은 올해 태풍피해를 입은 함경남도 검덕지구의 검덕광업연합기업소, 대흥청년영웅광산, 룡양광산 등에 2만5,000 세대의 주택을 새로 건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는 등 5개년계획 기간에 달성해야 할 목표들을 일부 공개하기도 했다. 새롭게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을 향해 어떤 대외메시지를 내놓을지도 관심거리다. ‘정면돌파전’의 기본축인 ‘안보’와 ‘경제’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지 북한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 소장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0년 12월 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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