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산종사 불교정전 의해義解 2

염관진 교무
염관진 교무

[원불교신문=염관진 교무] 박장식 종사 묻는다. “선악 인과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형상에서 선이 지극하면 악이 오고, 악이 지극하면 선이 오는 것입니까?” 정산종사 답한다. “음(陰)이 극(極)하면 일양시생(一陽始生)하여 차차 음은 밀리고 양(陽)이 세력을 잡는 것과 같이, 선악도 꼭 이와 같이 되어 극히 선한 자가 변하여 악할 수 있고, 극히 악한 자가 선으로 변하여 선자(善者)가 될 수 있다.” 이 문답을 곱씹으면 “인과 보응의 이치가 음양상승과 같이 되는 줄을 알며”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종사의 두 번째 질문 “성리와 인과는 진리의 양면관이니 부합된 점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에 대한 정산종사의 의해(義解) 덕분에 일원과 성품과 인과의 관계까지 포함해서 ‘일원상 법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성품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가 없이 무한해 우주만유가 “성품에 포용(包容)되어 있고”, 그래서 “시방 삼계가 다 오가(吾家)의 소유”일 수 있다. 성품은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고 생멸거래에 변함이 없고 선악업보가 끊어졌고 언어명상이 돈공하여 일체의 상대를 넘어선 “초월지경(超越之境)”이다. 반면에 인과보응과 음양상승은 인(因)은 과(果)로, 음은 양으로 또는 그 역으로의 유동이 생기며, 그로 인해 형성된 우주만유는 생성·변화·운동·소멸을 영원히 반복한다. 그런데 여기서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성품과 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선악업보가 끊어지고 생멸거래의 변함도 없어 그 자체로 구족(具足)한 성품이 도대체 왜, 어떻게 생성과 변화를 발생시켜 우주만유를 형성할까? 존재의 근원이 신도 질료와 형상도 아닌 성품이라니! 정산종사는 이 질문에 “인과의 체가 성리(性理)요, 성리를 운용하면 인과라, 이 성리를 깨달으면 인과의 변화를 알게 되고 인과를 알게 되면 성리를 깨닫게 되어, 인과가 성리요 성리가 인과이니라”라는 화두를 주신다. 

성품의 운용이 인과이기에 그 둘은 상즉·상입해서 “생멸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짓게 된다. “성품이 일원이요 일원이 곧 성품이다.” 그리고 그 두렷한 기틀인 성품에 의지해 돌멩이, 풀 한 포기, 동물 그리고 별을 포함한 우주만유가 존재한다. 이렇듯 성품과 인과가 둘이 아니기에 성품을 깨달은 자는 육도윤회의 사슬을 끊고 “천업”인 음양상승을 초월하여 눈·귀·코·입·몸·마음을 사용할 때 성품을 쓸 수 있고 공업(共業)으로 점철된 병든 세상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둘이 하나인 것도 아니기에 엄중한 책임을 묻는 인과응보를 감수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천업을 돌파하고 난면한 정업을 소멸하는 그 지난한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를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통해서 해결해 나아갈 수 있다.

/원광대학교

[2021년 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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