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엽 교무
유정엽 교무

[원불교신문=유정엽 교무] 평생 중국의 돈황과 용문 등 석굴에서 출토된 경전을 연구한 일본학자가 사석에서 법화경이나 화엄경 같은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경전보다 중국의 풍토에 적응하며 만들어진 재미있는 경전인 사천왕경이나 우란분경 같은 위경(僞經)에 손때가 많이 묻어 있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참혹한 훼불의 시대에 후대에 불법을 전하기 위해 신앙심 하나로 어두운 동굴에 불상을 조각하고 불경을 땅에 묻던 사람들도 재미있는 경전을 더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종교의 본질과 교화의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했다. 

어느 날 육조단경을 읽다가 문득 단경의 이야기가 ‘취권(醉拳)’이라는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권에서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수련은 게을리하고 놀 궁리만 하는 주인공은 집에서 쫓겨난다. 소화자라는 스승을 만나 고통스러운 수련을 받다 못 견디고 도망을 치다, 우연히 악당과 시비를 하다 상처를 입게 된다. 이후 충실하게 무술을 배우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악당에게 목숨이 위험해진 아버지를 구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소화자는 일곱 신선을 혼합해 창조하라는 가르침을 내리고, 주인공은 마침내 취권을 완성해 적을 쓰러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육조단경에서도 ‘주인공·경쟁자·스승과 교감·위기·깨달음을 통한 승화(昇化)’ 등 서사구조의 흐름이 취권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육조단경은 무념(無念)을 종지로 하여 돈오(頓悟)와 깨달음(見性) 이라는 선의 혁명을 일으킨 경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육조단경의 위상은 위대한 사상 이외에도 오래되었으나 가장 강력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의 힘도 작용했을 것이다. 종교의 위기라는 시대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우리 교법이 이야기의 힘을 활용했으면 한다. 

원불교 교법은 위대한 것이며 미래에 대한 무궁한 비전을 담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는 경전의 권위를 위해 한자로 제작해야 한다는 제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글로 『정전』을 편찬하신 바 있다. 하지만 이제 『정전』 조차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가르침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것을 대중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방편의 힘을 빌려야 한다. 중생제도를 위해 동물이나 아귀의 몸으로까지 화현하셨다는 보살들의 자비심처럼, 대중이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꺼이 몸을 낮추어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가르침을 담아야 한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위경(僞經)이 인도에서 시작한 불교가 일반 민중 속에 뿌리를 내리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가? 교법을 성장의 이야기 속에 담아내자. 앞에서 취권과 육조단경을 예로 들었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헤라클레스의 모험’과 ‘원탁의 기사’와 같은 고대의 이야기와 현대의 ‘드래곤 볼’과 같은 만화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영웅신화의 서사구조이다. ‘드래곤 볼’은 ‘서유기’를 모티브로 하여 만든 일본만화로 전 세계에서 성경 못지 않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종교의 이미지는 낡고 예스러운 것이지만, 아직도 ‘성장·스승과 제자·깨달음’의 이야기는 최고의 재미를 보장하며 만화나 영화를 통해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 이 세 가지야말로 종교의 전공이며 교화의 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시품 2장에서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을 강권할 것이 아니라 좌선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제도의 묘방이라 하셨다. 선을 통해 쌓은 법력 이외에도 이야기 속에 지혜와 성장을 담아 보여 줄 수 있다면 그 역시 소태산 대종사의 교화방법에 부합할 것이다. 비대면시대에 교화활성화의 열쇠는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개인의 경험과 역량에 의지하기보다 우리 모두의 성장 그리고 깨달음을 이야기 속에 담아 교화에 활용해야 한다.

/양평교당

[2021년 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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