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자력갱생의 모범공장으로 선전하는 평양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한 과자 제품들. 중국산 과자류를 대체하면서 국산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북한이 자력갱생의 모범공장으로 선전하는 평양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에서 생산한 과자 제품들. 중국산 과자류를 대체하면서 국산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가 5일 개막돼 8일간의 일정으로 열렸다. 12일 폐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민위천, 일심단결, 자력갱생의 3대 이념을 다시 깊이 새기고 더 높이 들고 나갈 것을 역사적 과제로 제시했다.  ‘백성을 하늘 같이 소중히 여긴다’는 뜻의 이민위천(以民爲天)과 일심단결은 북한의 정치적 구호인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지향과 목표를 표현한 것이고, 자력갱생은 “자체의 힘과 기술, 자원으로 강성 국가를 건설하자”는 지향을 담고 있다. 특히 자력갱생은 경제건설의 기본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제적 측면에서 더 주목되는 구호다. 

북한이 “자력갱생만이 살 길”, “자력갱생에 입각한 경제 건설” 등을 내세운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50년대 이후 경제가 어려울수록 자력갱생 구호는 요란했고, 1980년대에는 ‘자력갱생 제일일세’란 노래까지 나왔다.  
 

중국과 미국, ‘수입병’을 겨냥한 자력갱생 구호
북한은 2016년부터 자력갱생의 정신을 ‘자강력제일주의’란 구체적인 정치이념으로 정식화했다. 이후 북한은 ‘자강력 제일주의’를 김정은 시대의 ‘빛나는 시대어’라고 선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강력제일주의가 ‘원료와 생산재의 국산화’, ‘경제의 자립화’라는 측면에서 강조됐다. 김정은 위원장은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남들보다 더 훌륭하게 만들어 수입병이라는 말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자강력 제일주의를 철저히 구현할 것”을 주문하면서 “원료, 설비의 국산화와 생산기술 공정의 현대화로 사회주의 문명을 최상의 수준에서 창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8차 당대회에서도 북한은 “수입의존도를 낮춰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북한이 과거 자력갱생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수입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력자강의 위력’이란 표어를 붙어놓고 작업하고 있는 평양 류원신발공장의 노동자들.
‘자력자강의 위력’이란 표어를 붙어놓고 작업하고 있는 평양 류원신발공장의 노동자들.

여기서 수입의존도는 직접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북한의 생산재나 소비품 시장에서 팔리는 대다수 제품이 중국제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중국과 전통적인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국에 경제적으로 편입되는 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경제적 편입이 곧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는 2016년 노동당 제7차 당대회 이후 5년 동안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 북한의 백화점, 슈퍼마켓, 대형상점, 구역시장에서 판매되던 중국산 과자, 화장품, 담배, 의류 등의 비중이 현저하게 낮아지고, 북한제품들이 경쟁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중간재나 기계류의 해외 의존도는 높은 편이다. 그래서 북한은 ‘자력갱생’을 내세우며 외국의 첨단기술은 배우고, 자체로 연구개발할 수 있는 분야는 스스로 성과를 내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다. 

최근에는 자강력제일주의가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와 압박에 맞서는 수단으로 강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기대를 걸었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결렬되자 ‘장기전’을 선포하고 자체의 힘으로 경제적 난관을 돌파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김 위원장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을 높이 발휘할 때 남들이 가늠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힘으로 발전상승의 길을 내달리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중국과 미국을 겨냥한 ‘자강력제일주의’는 외부의 지원과 수입에 의존하려는 북한 정책담당자들의 사고방식 변화까지 고려하고 있다. 

과거 사회주의권이 존재할 때 북한은 사회주의국가의 시장을 통해 필요한 원료, 자재들을 자유롭게 들여다 경공업 제품들을 거의 다 자체로 생산하여 인민 생활을 보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에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고 사회주의 우호시장이 없어지자 북한은 극심한 원자재 부족에 시달렸고, 주요 공장·기업소들의 설비마저 들여올 수 없었다. 그러자 북한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자력갱생하는 길밖에 없다”며 자체의 원료, 기술을 강조했다.  

문제는 실리에 맞지 않는 ‘자력갱생’이 오히려 경제난을 심화시켰다는 점이다. 자력갱생한다고 하면서 과학기술적 요구에 맞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 주민들의 외면을 받거나 많은 전기와 원료, 자재, 노력을 낭비하면서도 생산물의 질은 떨어지는 역효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이것은 공장과 기업소의 막대한 경영손실로 이어졌다. 또한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당장 주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현안으로 등장했다. 

이렇게 되자 북한은 “일부 원료, 자재들을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다른 나라에서 사와야 인민소비품을 정상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인민생활에 절실히 필요한 1차 소비품과 기초식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원료, 자재의 수입을 늘리는 것은 인민생활 향상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며 대외수입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북한 내부에서는 “자체로 생산하는 것보다 수입하여 소비한 것이 경제적으로 유익한 소비품들이 많다”라든가, “전력이 긴장한(부족한) 조건에서 세계시장에 흔한 값싼 소비품까지 다른 나라에서 원료, 자재를 사다가 국내에서 질이 낮은 제품을 생산한다면 전력이나 낭비하였지 이득을 볼 것은 없다”는 주장들이 쏟아져 나왔다. 

당연히 값싼 중국제 경공업제품과 공업설비들이 북한의 유통망과 공장에 대대적으로 들어왔다. 북한의 공장, 기업소 책임자들 사이에서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원료와 설비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최근 북한은 이러한 사고를 패배주의적 생각이자 ‘수입병’이라고 지칭하며 이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체의 원료와 자재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이것이 “수입병을 정당화하는 방패”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강력제일주의가 새로운 ‘시대어’로 나온 또 다른 배경이다. 
 

평양가방공장 노동자들이 ‘자강력제일주의’, ‘국산화’ 등의 표어를 붙어놓고 일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북한은 자강력제일주의를 내세우며 경공업제품의 국산화에서 주력해왔다.
평양가방공장 노동자들이 ‘자강력제일주의’, ‘국산화’ 등의 표어를 붙어놓고 일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북한은 자강력제일주의를 내세우며 경공업제품의 국산화에서 주력해왔다.

자강력제일주의는 효과가 있을까
이번 노동당 8차대회에서 자강력제일주의는 중요한 정치이념으로 재확인됐다. 물론 북한도 모든 원료와 설비를 자체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대외경제의 확대발전을 강조하고, 해외 자본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제재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조건에서 자체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는 자력갱생의 길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경제계획만 거창하게 세워놓고 목표에 미달하면 외부조건 탓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달성할 있는 현실적 목표를 설정하고 경제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힘을 쏟자는 의도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는 코로나19사태로 불가피하게 국경을 봉쇄할 수밖에 없게 되자, 이를 기회로 활용해 경제시스템과 경제체질 개선에 주력하면서 어느 수준까지 자력갱생할 수 있는지 시험했다. 지난 7차당대회에서 발표한 5개년경제발전전략은 목표에 현저하게 미달했지만 심각한 물가 상승이나 식량난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 

따라서 향후 북한은 자력갱생노선의 방향을 경공업제품에 이어 주요 공장과 기업소의 자립화, 중간재 생산의 국산화, 첨단 과학기술을 적용한 공장현대화, 군수기술과 시설의 민수(民需)화 등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북한에서 자력갱생, 자강력제일주의가 성과를 내면 낼수록 역으로 대외무역 확대와 개방이 촉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립경제와 외자유치가 결합되어야 실제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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