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창현 소장] 2016년 4월 북한에서 흥미로운 책이 하나 출판됐다. 제목이 『슈퍼마케트식 상점조직과 운영』 이다. 이 책에서는 다른 나라의 슈퍼마켓 운영 사례를 소개하면서 슈퍼마켓의 내부구조, 상품관리, 상품진열, 상품판매전략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특히 슈퍼마켓식 상점운영이 세계 상업발전의 추세에 맞고, 손님들의 구매 편리성을 높일 수 있다며 이러한 판매방식을 널리 보급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쇼핑방식이 북에서는 2010년대에 들어와서야 도입되기 시작한 셈이다. 
 

2019년 평양 대성백화점 슈퍼마켓에서 평양시민이 쇼핑을 하고 있다. 고객들이 카트를 밀거나 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2019년 평양 대성백화점 슈퍼마켓에서 평양시민이 쇼핑을 하고 있다. 고객들이 카트를 밀거나 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할 수 있도록 변화된 것을 알 수 있다. 

‘닫긴 매장’에서 ‘열린 매장’으로 변모
과거 북한의 백화점과 상점들은 고객이 판매원에게 구입하고 싶은 물건을 말하면 판매원이 이를 꺼내주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손님이 진열대에 있는 상품을 선택하면 판매원이 전표를 써주고, 이것을 가지고 계산대에서 결제한 후 다시 판매원에게 가 영수증을 제시하면 상품을 내주는 형식이다. 이런 형식을 북한에서는 ‘닫긴 매장을 위주로 하는 상점’이라고 부른다. 북한 주민들은 상품이 다양하지 않고 구매량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판매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2012년 중국기업의 투자로 ‘광복거리상업중심’이라는 이름의 대형슈퍼마켓이 처음 평양에 세워졌다. 북한에도 고객들이 상점 안을 자유롭게 오가며 필요한 상품을 고르고 결제만 판매원에게 맡기는 ‘슈퍼마켓식 방식’이 도입된 것이다. 북한에서는 슈퍼마켓을 ‘대규모 소매상점’이라고 부르며, “상품의 판매원가를 낮추고 회전율을 높일 목적으로 식료, 섬유, 피복, 체육용품 등의 매대들에 자체봉사방식을 도입한 소비판매거점”이라고 규정한다. 

2011년 개장을 앞둔 ‘광복거리상업중심’을 직접 시찰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닫긴 매장’과 열린 매장의 차이에 대해 “백화점에서는 구매자들이 물건을 마음대로 만져볼 수 없지만 슈퍼마케트에서는 구매자들이 물건을 마음대로 만져보고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상품을 사갈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광복지구상업중심을 시작으로 새로 등장한 ‘슈퍼마켓식 상점’들은 상품의 입고, 보관, 출고, 판매, 대금결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컴퓨터화 하고, 모든 상품에는 바코드를 붙여 품목과 개수 등 판매실적을 바로 알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상점 내부는 한국의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처럼 고객들이 카트를 밀거나 바구니를 들고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2010년대 초 평양백화점에서 평양시민들이 가정용품을 사는 모습. 과거에는 진열된 물건을 고르면 판매원이 꺼내주는 방식이었다. 
2010년대 초 평양백화점에서 평양시민들이 가정용품을 사는 모습. 과거에는 진열된 물건을 고르면 판매원이 꺼내주는 방식이었다. 

슈퍼마켓식 운영방식 전국 상점에 확대
북한은 새로 도입한 슈퍼마켓식 상점이 편리하고, 주민들의 이용도가 높아지자 이것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기 시작했다. 2020년 북한은 “소비자들의 편의를 중시하는 선진적이며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며 전국 각지의 상업봉사망을 슈퍼마켓식 방식으로 개선하고 있다고 밝혔다. 평양의 각 동(洞)에 있는 국영 식료품 상점들이 종전 공급자 위주의 운영 대신 고객 중심의 서비스라 할 수 있는 슈퍼마켓 방식을 일제히 도입하고,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는 평양아동백화점, 평천구역 미래공업품상점, 서성구역 장경식료품상점, 사동구역 장천상점 등에서 이미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이러한 상점 운영방식의 변화는 세계적 추세를 수용하고, 최근 북이 강조하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상품판매방식에도 반영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것은 북한이 내세운 오영희 대동강구역 릉라2식료품상점 점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새롭게 꾸려진 봉사 환경을 보려고 수많은 주민이 찾아와 식료품 상점은 늘 흥성이고 있다”며 “우리는 손님들의 편리를 최우선시하는 원칙에서 봉사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슈퍼마켓 방식을 도입하면서 인민생활 개선과 실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우선 슈퍼마켓식 상점에서는 “식료품과 일용잡화, 가정용품을 비롯해 근로자들의 소비생활에서 대중적인 성격을 띠는 기본생활용품들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기본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남한의 동네마다 들어서 있는 기업형 슈퍼마켓과 비슷한 형태다. 

또한 북한은 일반상점을 슈퍼마켓식 상점으로 바꾸려면 초기 투자가 필요하고, 투자 대비 경제적 실리가 나는 지를 꼼꼼히 따져야 필요가 있기 때문에 ‘실리’를 앞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슈퍼마켓의 효율적 운영뿐만 아니라 상품의 안정적 공급을 통한 매출 증대, 판매원 축소를 통한 인건비 절약 등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상점 운영방식 변화 외에도 매출 증대를 위해 대형 상점들에서 할인행사를 열기도 하고, 지출 금액의 일부를 소비자에게 되돌려주는 ‘캐시백’ 제도까지 도입했다. 대표적으로 북한의 첫 슈퍼마켓인 광복거리상업중심에서는 초기부터 고객이 북한 돈 10만 원 이상 물건을 구입하면 5천 원짜리 ‘우대표(상품권)’를, 100만 원 이상 상품을 산 경우에는 식당에서 영구적인 우대봉사(할인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카드 1장을 발급해주는 할인제도를 운영했다. 평양 대성백화점의 경우에도 2019년 일부품목에 대해 10일간 20% 할인행사를 진행했다. 
 

2018년 평양화장품공장의 화장품전시장에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며 고르고 있는 시민들. 
2018년 평양화장품공장의 화장품전시장에서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며 고르고 있는 시민들. 

우리는 익숙, 북한 주민에게는 신세계
특히 휴대폰 보급이 폭발적으로 늘고,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비대면 서비스도 적극 도입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걸 ‘주문봉사’라고 한다. 미리 전화로 상품 예약을 한 뒤에 상점에 가서 물건을 찾아오거나 온라인으로 주문, 배달시키는 방식이다. 북한의 전자상거래 사이트인 ‘만물상’, ‘옥류’ 등은 휴대폰을 통해 전자결제(북한에서는 ‘무현금결제’라고 한다)도 가능하다. 

북한의 스마트폰에는 삼성페이, 카카오페이 등과 유사한 핀테크 기반 간편 결제 애플리케애션(앱)이 기본 사양으로 내장돼 있다. ‘울림’이라는 이름의 이 앱에는 송금, 카드결제, 선불 충전, 전자상거래 서비스 등의 기능이 포함돼 있다. 북한은 전자상거래(전자상업)를 통한 상품판매가 ‘가까운 연간에 세계상품시장을 지배할 것’이라며 ‘상업부문에서 경영비용을 크게 절약하고 유통체계를 개선하도록 적극 추동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아직 배달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초보적이지만 ‘배달서비스’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 ‘배달의 민족’이란 말처럼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한 모습이지만 북한 주민들에게는 이제야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고객이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 있는 슈퍼마켓식 운영 상점의 전국 확대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이후 공장·기업소 등 모든 부문에서 경쟁을 강화하고 독립채산제를 확대하는 등 시장 경제적 요소를 일부 받아들인 데 따른 현상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 1년 동안 북한은 코로나19 차단을 위해 국경을 봉쇄했다. 이에 따라 수입이 중단됐고, 자체 생산이 어려운 밀가루, 설탕, 식용유 등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결국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슈퍼마켓식 상점 확대는 우선 안정적인 상품 공급  여부에 성패가 달려있다고 하겠다.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

ㆍ서울대 국사학과, 동 대학원 졸업
ㆍ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전문기자
ㆍ북한대학원대학교와 국민대 겸임교수
ㆍ(사)현대사연구소 소장 역임
ㆍ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정책기획위원 
ㆍ민화협 정책위원 등으로 활동

[2021년 2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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