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금 어떤 풍경으로
내 안의 부처를 깨우고 계신가요?

김준영 교무
김준영 교무

[원불교신문=김준영 교무] 원기106년 한 해를 살아갈 표준으로 전산종법사님께서는 “집집마다 부처가 사는 세상”이라는 멋진 법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동시에 상시훈련의 생활화를 강조하시죠. 집집마다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순역의 경계를 자양분 삼아 공부해 지금 당장 혜복이 충만한 부처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실질적인 공부와 단련으로 불필요한 고통을 덜고 지혜롭고 자유로운 행복한 활불이 되자는 거죠.

행복, 모든 생명의 공통된 소망 
그것은 모든 신앙과 수행의 최종적인 목표가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나를 포함한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죠. 요즘과 같은 코로나 상황에서 이런 희망조차 없다면 정말 견디기 힘듭니다. 대종사님께서도 원불교 최초의 교서 『수양연구요론』 첫 표지에 명시하셨죠. “인생의 요도는 수양에 있고, 수양의 목적은 연구에 있으며, 연구의 목적은 혜복을 구함에 있다.” 

원불교 모든 종교활동의 최종적인 목적이 혜복의 증진임을 분명히 천명하신 겁니다. 지금부터 영생을 일관하고,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 함께 행복한 방향 말입니다. 공부의 형식이나 교리 학습에만 매몰돼 본인의 인격이나 삶과 괴리된 공부는 오히려 아상을 키우는 독이 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 늘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종교인들이 많이 범하는 오류이기도 하니까요.


일의 있고 없음에 따른 다양한 공부들
학업과 생계 활동, 가사와 육아 등 치열한 삶의 터전에서 행복을 향해가는 공부는 어떻게 할까요? 상시훈련이죠. 어떤 공부든지 매일 꾸준히 계속해 힘을 얻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우리의 평소 생활을 분석해보죠. 일반적으로 보통 7~8시간은 자고, 최소 8시간의 공부와 일, 나머지 8시간 전후로 먹고, 씻고, 왕래하고, 쉬고, 볼 일보고, 운동하며 보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일이 있을 때와 일이 없을 때로 나눌 수 있죠.

이런 하루를 통해 할 수 있는 공부를 생각해볼까요? 아침, 저녁 일이 없을 때는 수양과 연구를 중심으로 염불, 좌선, 경전 법규 연습, 의두 성리 연마, 일기, 미리 연마, 사후 대조 공부 등이 주가 되겠죠. 낮에 일이 있을 때는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표준으로 각자에게 주어진 일,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더라도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를 염두에 두면 보다 많은 이들의 행복과 공존이 가능하겠죠. 정의를 실행하고 불의를 제거하는 취사의 표준으로 무관사에 부동하는 공부를 비롯해 계문을 적극적으로 대조하거나, 솔성요론 등을 활용해 악습을 제거하고 선한 습관 길들이기 등 다양하게 기질변화 심성변화를 도모해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낮에도 일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마음을 챙겨 좌선을 하거나 염불, 경전 연습, 의두 성리, 대조 공부 등을 할 수도 있죠. 힘 닿는대로 대중에게 유익주는 봉공활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활동은 아닐지라도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에게 친절하고 자비롭고, 자원과 환경을 보호하고 모든 생명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방식으로 먹고 입고 사용하는 삶의 방식의 전환 또한 중요한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 환경파괴, 자원고갈, 생명경시의 풍조가 요즘과 같이 위험한 수준에서는 보다 거시적이고 광범위한 공생공영의 안목에서 사은에 보은하는 공부를 바라볼 필요가 있죠. 공부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전인적으로 삶 자체가 혜복을 증진하는 과정으로 승화되는 겁니다. 이때 주의심을 놓지 않고 지속하기 위해 유무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따로 또 함께, 교당내왕과 정기훈련 
이렇게 공부표준을 잡고 매일 공부를 하다 보면 소득도 생기고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죠. 이럴 때 교당과 지도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교당을 찾아서 소득된 바를 감정을 받고, 문답하고 의심을 해결하며 이해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1주일에 1번 정도 법회에 참여해 공부하고, 교당을 다녀갈 때는 소득유무를 반조해 실생활에 활용합니다. 

나아가 1년에 한두 차례 정기훈련에 참여해 깊은 경지의 공부에 전념할 수 있죠. 혼자 공부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전문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교당과 정기훈련을 통해 배우고 감정을 받더라도 스스로 일상에서 실천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심신 간의 변화는 어렵습니다. 배운 공부를 내면화 해 스스로 알아가고 체득하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형편에 따라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한 부분씩이라도 집중적으로 철저하게 공부를 해나갈 필요가 있죠. 스스로의 적공과 하고 또 하는 훈련의 과정 없이 집집마다 부처님이 사는 세상을 만들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공부,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막상 공부를 하려고 보니, 공부할 것이 너무 많죠. 염불, 좌선, 경전, 강연, 회화, 의두, 성리, 정기일기, 상시일기, 주의, 조행. 가짓수도 정말 많습니다. 이뿐 만이 아니죠. 진리에 대한 믿음과 깨달음, 감사와 보은, 기질변화 심성변화, 참회, 기도, 법회참석, 정기훈련 이수, 악습제거, 정의실행 불의제거, 무관사부동, 계문준수, 솔성요론, 무시선 무처선, 처처불상 사사불공, 영육쌍전 등. 어떤 공부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마치 나들목의 병목현상처럼 해야 할 공부가 산적한 기분입니다. 그러니 본인의 상황에 맞게 한가지씩이라도 구체적인 공부 계획을 잡고 실천할 필요가 있죠. 당면한 과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공부 거리를 잡고, 자신이 부족하거나 해보고 싶은 공부 중에 선택해 본격적인 공을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집집마다 깨어나는 부처님 풍경 
예를 들어 교당을 다닌 지 30년이 넘었어도 집에서 혼자 좌선을 해보지 않은 교도님이 좌선을 시작한다고 합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양치와 세수를 마치고, 타이머를 맞춰놓고 좌선을 하죠. 10분 20분 시간을 늘려가며 1시간 정도 좌선을 꾸준히 실천합니다. 그렇게 조금이라도 계속하는 좌선과 체험이 실질적인 우리 인격과 삶을 바꾸는 데 큰 힘을 발휘합니다. 경전공부도 그렇죠. 경전을 글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데 그치면 진리가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숨쉬지 못합니다. 깊이 새겨서 읽고, 모르는 점은 의문하고, 사색하고, 문답감정하고, 경계를 당할 때 그 터득된 바를 적용해서 실질적인 효과를 볼 때 비로소 경전공부가 내 것이 되죠.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말씀에 공감하며 경청하더라도 돌아오는 길에 잊어버리면 깊이 있는 공부가 어렵습니다.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대조하면서 듣고, 기억할 것은 염두에 두었다가 경계를 당해서 마음 씀씀이와 실천에 적용을 하는 거죠. 그래야 불법시생활 생활시불법이 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공부는 많이 하지만 몸을 통해 실천하는 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일상수행의 요법’은 이 모든 공부를 잘 요약해놓은 지침이기도 하죠. 새해에는 시시때때로 일상수행을 요법을 대조하면서, 일이 있을 때와 일이 없을 때를 따라 본인의 형편에 맞게 정진 적공의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계획과 실천만큼 우리 안의 부처님은 깨어납니다. 한꺼번에 모든 공부를 다 할 수는 없어도 한 가지씩 실천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죠. 매일 좌선하는 부처님, 염불하는 부처님, 경계마다 헌신 봉공하는 부처님, 경전공부하는 부처님, 의두 성리 연마하는 부처님, 습관 고치는 부처님, 일기쓰는 부처님, 범사에 감사하고 행복한 부처님, 무관사에 부동하는 부처님, 자비를 실천하는 부처님, 온전한 정신으로 취사하는 부처님.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정한 목표와 서원으로 꾸준히 정진 적공하는 다양한 모습으로 집집마다 깨어나는 부처님들의 풍경, 원불교의 자산이자 위기에 처한 인류와 세상의 희망입니다.

/중앙중도훈련원

[2021년 3월 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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